기금 신설 자체가 잠재성장률 반등이나 재정 건전성을 보장하지 않는 만큼 추가세수 산정부터 기금 인출, 사업 평가까지 객관적인 운용 규칙을 갖춰야 한다는 주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11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2027년 예산안 및 미래대응기금 토론회’를 열고 미래대응기금의 운용 방안과 분야별 투자 방향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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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향우 기획예산처 사회예산심의관은 첫 번째 세션 ‘예산안과 미래대응기금 추진방향’에서 반도체 호황에 따른 추가세수를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한 전략적 투자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인공지능(AI)이 확산하는 앞으로 2~3년을 국가 시스템을 재설계하고 경제의 성장판을 열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로 보고 있다. 추가세수를 단기 경기부양을 위한 소비성 지출로 소진하거나 재정건전성 관리에만 활용하면 성장 투자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최근 10년간 내국세 증가 추세를 웃도는 내년도 추가세수 162조 3000억원을 미래대응기금에 적립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45조 4000억원은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분야에 투자하고 12조 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 물량을 줄이는 데 활용한다. 나머지 104조 4000억원은 세수 결손 등 재정 여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여유자금으로 운용한다.
정 심의관은 “과감한 재정투자로 성장의 물꼬를 트고 그 성장이 다시 재정 기반을 튼튼히 하는 선순환 구조를 안착시키겠다”고 말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산정 방식 개편에 따른 절감액은 교육·인재 계정에 별도로 적립해 영유아·고등교육과 인재 육성 등에 투입한다. 교육 분야 전체 투자 규모는 줄이지 않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김정애 기획예산처 예산정책과장도 “반도체 등 특정 산업 의존도가 높아 세수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이를 완화·흡수할 재정 안정화 장치로 미래대응기금 신설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입을 토대로 지출을 확대하고 경기 둔화기에 세입 감소에 맞춰 지출을 줄이는 ‘경기동행적 재정 운용’의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KDI “기금 만든다고 나라 살림 저절로 튼튼해지지 않아”
이태석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두 번째 세션 ‘미래대응기금 운영방안 및 분야별 투자방향’에서 예상보다 많이 걷힌 세수를 일회성 지출로 소진하지 않고 미래세대를 위한 자산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방향엔 공감하면서도 기금 운용 과정의 위험 요인을 짚었다.
이 부장은 “기금을 만든다고 경제의 성장잠재력이나 잠재성장률이 저절로 좋아지거나 나라 살림이 저절로 튼튼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금의 성과는 독립적인 재원 검증과 명확한 적립·인출 규칙, 합리적인 사업 평가 체계를 얼마나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내년도 국세수입은 584조 4000억원으로 올해 추가경정예산 기준 415조 4000억원보다 40.7%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가 지난 7월 전망한 올해 명목성장률도 12.3%로 1996년 이후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세수 증가가 반도체 업황에 크게 좌우되는 만큼 현재 흐름이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는 게 KDI 판단이다. 일시적으로 늘어난 세입을 토대로 지출을 확대했다가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진행 중인 사업을 중단하거나 국채 발행을 크게 늘려야 할 수 있다. 지방교부세 등의 사후 정산 과정에서도 재정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KDI는 추가경정예산과 세입예산 재추계, 세계잉여금 등 기존 제도만으로는 이례적인 세수 증가분을 장기 자산과 성장 투자, 재정 안정에 균형 있게 배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새로운 기금이 세출을 확대하는 우회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운용 원칙을 먼저 확립해야 한다고 봤다.
“추가세수 객관적 검증…목적 변경 땐 국회 승인 필요”
KDI는 우선 기금에 넣을 추가세수를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목별 세수 전망과 민감도를 공개해 평소보다 더 걷힌 세수가 일시적인지, 추세적으로 늘어난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금 출연을 위한 차입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확실한 세입 전망을 근거로 돈을 빌려 기금을 조성하면 미래세대를 위한 자산을 마련한다는 제도 취지와 달리 국가채무 부담만 키울 수 있어서다. 일시적인 추가세수가 상시 사업이나 고정 지출로 굳어지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안정화와 성장 투자, 국가채무 관리 등 기능별로 운용 규칙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위기 대응에 필요한 최소 유동성을 우선 확보한 뒤 재정 상황에 따라 채무 위험을 낮추거나 집행 준비가 완료된 성장 사업에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등 사업 계정엔 공통된 심사 기준을 적용하고 독립적인 성과 평가도 시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기금의 목적을 중대하게 변경하거나 계정 간 자금을 이전할 때는 국회 승인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채와 금융자산, 운용 비용, 다년도 사업 성과를 통합해 공개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날 조용범 기획예산처 차관은 미래대응기금을 “단년도 예산의 한계를 넘어 미래를 위해 적립한다는 점에서 우리 재정 역사에 전례가 없는 제도”라고 평가하면서 “투자의 결실이 미래세대의 희망으로 남으려면 설계가 정교해야 하고 운용이 투명해야 하며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예산처는 토론회에서 제기된 전문가 의견을 검토해 국회 심의 과정에 반영할 계획이다. 국회에 제출한 ‘미래대응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법률안’ 등 관련 법률 제·개정안도 연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와 협의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