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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호 "신중하게" 의견인가, 지시인가…판례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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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원 기자I 2025.11.12 15:15:09

정 장관 세 차례 "신중하게 판단하라" 의견 전달
노만석 대행 "법무부 의견 참고" 명시…영향 시인
박재윤 교수 "상대방이 지시로 느꼈다면 규범적 지시"
법조계 "내부 관계 적용 한계" vs "경험칙상 지시"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대장동 항소 포기 과정에서 대검찰청에 세 차례에 걸쳐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전한 것은 ‘단순 의견’일까, 아니면 ‘사실상 지시’일까.

법학계에서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형식이 애매하더라도 상대방이 지시로 인식했다면 규범적으로 지시”라는 분석이 나왔다. ‘적법한 형식을 갖추지 않았어도 지시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에 대해 판사 출신 변호사들은 “행정기관 내부 관계라 판례 적용에 한계가 있다”, “경험칙상 사실상 지시로 볼 수 있다”는 엇갈린 견해를 보였다.

정성호(왼쪽) 법무부 장관과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뉴스1)
세 차례의 “신중하게” 의견 제시

정성호 장관은 지난 10일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에서 대장동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해 “법무부 장관 취임 이래 구체적 사건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지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며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정도의 의견만 제시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이 밝힌 의견 전달 과정을 보면 지난달 31일 1심 선고 직후 첫 보고를 받을 때 “항소 여부는 신중하게 알아서 판단해라”고 했다. 이후 지난 3~4일경 대검으로부터 “항소 필요성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에는 “신중하게 잘 판단해라”고 다시 의견을 냈다. 항소 시한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7일에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합리적으로 잘 판단했으면 좋겠다”고 세 번째 의견을 전달했다.

정 장관은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과 사건 관련해서 통화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직접 지시를 부인했다. 하지만 노만석 대행은 지난 8일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결정했다고 명시했다. 법무부 의견이 결정에 크든 작든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한 것이다.

“상대방이 지시로 느꼈다면 규범적으로 지시”

이번 논란을 법리적으로 분석한 박재윤(사법연수원 29기)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행정법 전공, 전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교수)는 “법무부 장관이 애매한 말을 했다고 이것이 정말 수사지휘를 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논점을 피하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행정법적으로 표현하면 어떠한 처분에 법령상 근거가 있는지, 행정절차법에서 정한 처분 절차를 준수했는지는 본안에서 당해 처분이 적법한가를 판단하는 단계에서 고려할 요소이지, 소송요건 심사단계에서 고려할 요소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법령상 근거나 절차 준수 여부는 ‘처분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적법한 처분인가 위법한 처분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지난 2020년 5월 대법원 판결(2017두66541)을 인용하며 “행정청의 행위가 ‘처분’에 해당하는지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불복방법 선택에 중대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상대방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해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무부 장관이 적법한 형식을 지키지 못한 것은 그 자체로 위법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사지휘라는 처분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며 “누가 어떻게 개입했든 상대방이 지시로 느꼈다면 규범적으로 지시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장관이 검찰청법상 정해진 수사지휘 형식을 갖추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지시가 아니다’라는 면책 사유가 될 수 있을까.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답은 ‘아니다’다. 형식 결여는 처분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그 처분이 적법한지 위법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형식은 ‘의견’이었을지 모르지만 법적으로는 ‘지시’에 해당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분석이다.

법조계 “내부 관계 적용 한계” 지적도

다만 법조계에서는 박 교수의 분석에 대해 다른 견해도 제기됐다. 판사 출신 A변호사는 “행정 내부의 지시, 명령은 행정법상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처분에 적용되는 법리가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관의 항소 포기에 관한 명확한 지시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판사 출신 B변호사도 “해당 대법원 판결은 행정청이 일반 사인이나 기업에 대해 행한 행위가 행정처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판단기준”이라며 “행정기관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이 문제되는 이 사건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인지는 의문”이라고 봤다.

그러나 판사 출신의 C변호사는 “통상의 경우 매번 여러 차례에 걸쳐서 ‘신중하게 잘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며 “일반적인 경험칙상 반복적으로 특별하게 이야기하면 그게 사실상 어떤 지침이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라고 말했다. C변호사는 해당 대법원 판례도 의미가 있다면서 “법무장관이 다른 일반적인 사건들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하라’고 그랬는지, 당시 의견 전달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 구체적 팩트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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