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수준이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레고랜드 사태 때와 비슷하게 치솟으면서 외환 당국은 환율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이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최근 원화 가치의 추락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 문제가 아니라 국내 정치 리스크에 따른 불안 심리 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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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수급 개선방안 이달 25일 전에 발표”
11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당국은 외환시장 구조적 수급 개선을 위해 △은행 선물환포지션 확대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완화 △한은-국민연금공단 간 외환 스와프 규모 확대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 완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달 25일 이전에 발표할 계획이다. 현재 골자는 거의 정해졌으며 적용에 있어 세부적인 부분을 협의 중이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9일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이후 “외환 유입을 촉진하기 위한 구조적 외환 수급 개선방안도 조속히 관계기관 협의를 마무리해 12월 중 발표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 논의에 참여 중인 한 당국자는 “(윤 대통령) 탄핵 여부 등 정치 사안과 상관없이 12월 중에 내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라며 “당국에선 정치 상황과 경제 현안은 분리돼 있다는 점 계속 강조하고 있고, 만약 발표가 늦춰진다면 개선 방안에 대해 검토가 더 필요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은행 선물환 포지션 한도 확대 방안이 검토 중이다. 선물환 포지션은 선물외화자산에서 선물외화부채를 뺀 금액이 은행 자기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율인데, 정부가 한도를 규제한다. 현재 규정상 국내 은행은 자기자본 대비 50%, 외국계 은행 국내지점은 250%까지만 가능하다. 이 비율을 확대하면 은행의 외화자금 공급 여력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은행들은 환 헤지, 자금조달, 유동성 관리 등을 위해 외환 스와프 시장에서 선물환을 이용한다.
LCR 규제 완화도 수급 개선 방안 리스트에 올라 있다. 현재 은행들은 30일 이내 만기가 도래하는 외화부채의 80%에 해당하는 유동성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외화부채에 대한 유동성 보유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이에 대형 은행들은 리스트 관리를 위해 LCR 규제를 큰 폭으로 상회하는 수준으로 유동성을 관리하고 있는데 이를 완화해 줄 경우 외환 시장은 물론 시중 유동성 수급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 한은과 국민연금은 이달 말에 만료되는 외환 스와프 거래를 1년 연장하기로 가닥을 잡고 그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양 기관이 외환 스와프를 맺게 되면 국민연금이 해외주식을 살 때 시장 대신 한은이 국민연금으로부터 원화를 받고 달러를 내준다. 외환 시장의 ‘큰 손’인 국민연금의 달러 매수 수요를 당국이 흡수하는 셈이다. 앞서 양 기관은 2022년에 한도를 100억달러로 설정해 외환 스와프를 체결한 이후, 계약을 연장하면서 지난해엔 350억 달러로 올해 6월엔 500억달러로 한도를 늘린 바 있다.
국민연금의 환 헤지 비율을 높여 선물환 매도를 늘리는 방안도 거론된다. 선물환 매도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장래에 받을 달러를 일정한 환율로 고정해 은행에 파는 것이다. 선물환을 매수한 은행은 다음날 자동으로 그만큼의 달러 현물을 외환시장에 팔아야 하는데, 환율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번 조치는 전반적으로 비율 조정을 통해 그동안 높여놨던 외화 유입에 대한 장벽을 완화하고, 국내 시장의 고질적인 달러 부족 현상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당국측 설명이다. 달러 유입이 늘면서 단기적으로 환율이 하향 안정화 되고 중장기적으로 외환 시장 변동성이 낮아지는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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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유동성 큰 문제 없지만 근본적 문제 해결해야
한은이 지난 4일 비상계엄 사태 직후 개최한 임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결정된 ‘필요시 외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조치에 대해선 아직 실행 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단기 유동성 공급이 필요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카드로 준비하고 있으나 현재 외화 유동성 관련 위기 징후는 포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국내 은행권은 시장 지표 및 유동성 지표를 체크하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환율 급등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 외화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지만, 현재 외화 유동성 지표는 여유 있게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다른 대형은행 관계자도 “현재 당국에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는 상황이고 당장 특별한 대응을 요하는 상황은 아니라 주시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다만. 현재의 정국 불안과 이에 따른 시장 심리 및 신뢰도 저하가 지속될 경우 금융권은 물론 시장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도 나온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원·달러 환율은 1430원을 상회하고 있고,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이 환율 상승 속도를 다소 완만하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환율 상승 흐름 자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율 상승이 이어진다면 금융기관도 유동성 문제가 악화될 소지가 크다”며 “한국의 정치 상황이 조기에 안정되지 않고 장기화한다면, 추후 정치 상황이 안정되더라도 금융시장은 계엄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봤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도 현재 거론되고 있는 당국의 외환시장 안정 조치들에 대해 “어느 정도 효과가 있겠지만 시장 불안 자체를 완전히 불식시키기엔 한계가 있다”면서 “권한대행이 정해지고 조기 대선 일정이 잡히는 등 현 정국이 안정되고 일정이 가시화된다면 환율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될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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