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서울시청 스마트전시관.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이 주름이 자글자글 잡힌 손가락으로 키오스크를 조심스럽게 꾹꾹 눌렀다. 화면을 잘 보기 위해 안경을 벗거나 실눈을 뜨고, 굽은 등을 이리저리 젖히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갈 곳 잃은 손가락이 키오스크 스크린 앞을 맴돌 때면 옆에 있던 도우미가 길잡이 노릇을 했다.
키오스크 체험기기로 연습을 마친 노인들은 시청 인근 패스트 푸드점으로 향했다. 패스트 푸드점은 주문 도중 추천 메뉴가 나오고 적립, 포인트 활용 팝업까지 뜨는 등 고난이도 키오스크가 점원 대신 있는 곳이었다. 키오스크 앞에 멈춰선 노인들은 교육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아기가 걸음마 떼듯 천천히, 조심스럽게 키오스크 버튼을 눌렀다. 마침내 주문이 완료되고 영수증이 나오자 “와”라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키오스크와의 씨름에서 승리한 어르신들은 ‘전리품’처럼 영수증을 한 손에 꼭 쥐었다. 얼굴엔 아이같은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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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비대면 시대가 앞당겨지면서 식당부터 카페·극장·공항 등 생활 전반에 걸쳐 키오스크가 빠르게 늘자 노인들이 ‘디지털 사각지대’에 몰리고 있다. 아날로그에 익숙한 노인들은 음료 한잔 제대로 사먹기 어려운 등 디지털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형국이다. 만 55세 이상 사람 둘 중 하나는 키오스크를 사용해보지 않았다는 서울 한 재단의 설문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에 서울시는 원하는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디지털 기초 교육을 벌이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인 키오스크 수업의 경우 노인층 참여가 두드러진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노인들은 앞으로 디지털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들은 ‘노인들도 디지털 사회에서 배워야 제대로 살 수 있다’며 입을 모았다. 조명희(71)씨는 “식당부터 기차, 고속버스, 영화 전부 키오스크로 하는데 뒤에 사람 눈치 보이고 매번 기계도 바뀌어서 어려웠다”면서 “교육 받으니 못 시켜먹었던 햄버거도 사먹고 삶이 더욱 풍성해졌다”고 했다. 백승호(68)씨도 “옛날 같았으면 이것저것 만져보다 ‘그냥 안 먹고 말지’하고 나갔을텐데 이제 배워서 혼자 할 수 있겠단 자신감이 생겼다”며 “요즘에 이곳저곳에 키오스크 많아서 배우지 않으면 아예 살 수가 없지 않느냐”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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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교육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는 건 아니다. 신문물을 배우는 데 거부감을 갖거나 교육 프로그램 정보조차 모르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조씨는 “주변 친구들한테 추천했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고 전했다. 실제로 시청의 이 교육은 일주일에 4번 정도 이뤄지만, 신청인이 없는 날도 있다고 한다.
서울시는 올 초부터 시행한 ‘서울시 디지털 역량강화 추진 계획’을 확대 시행할 방침이다. 일대일 밀착교육인 ‘어디나지원단’을 운영해 노인 이용시설을 거점 삼아 키오스크 활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다음달부터는 시내 곳곳에 디지털 안내사를 배치해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을 지원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보 취약계층인 어르신들에 대한 정보 교육이 절실하다”며 “어르신들이 디지털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당당한 구성원으로 설 수 있게 맞춤형 교육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