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1월 고려아연 임시 주총에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손을 들어줬는데, 이번 주총에서 기존 입장을 유지할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사태를 일으키는 등 국민연금기금 운용 방향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지속됐던 점이 의결권 행사 방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외국계 기관 투자자들의 표심이 어느 쪽으로 쏠릴지도 양측 경영권 분쟁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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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는 오는 27일 고려아연 의결권 행사방향을 논의한다. 다음날인 28일 고려아연 정기 주총을 앞둔 행보다.
국민연금은 작년 10월 고려아연 공개매수 과정에서 주식을 처분해 4.51%로 지분율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이번 주총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고려아연 주총에서는 크게 7가지 안건이 논의된다.
세부 안건은 △제51기 연결 및 별도 재무제표(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 포함) 승인의 건 등 △이사회 비대화를 통한 경영활동의 비효율성을 막기 위한 이사 수 상한 설정 관련 정관 변경의 건 등 △이사 수 상한이 19인임을 전제로 한 집중투표에 의한 이사 8인 선임의 건 △이사 수 상한이 없음을 전제로 한 집중투표에 의한 이사 선임의 건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의 건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의 건(서대원) △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100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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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홈페이지를 보면 고려아연 이사회는 총 18명 이사로 구성돼 있었다. △이사회 의장·사외이사(황덕남) △사내이사 3명(최윤범·박기덕·정태웅) △기타 비상무이사 2명(장형진·최내현) △사외이사 13명(김도현·김보영·이민호·권순범·서대원·황덕남·이상훈·이형규·김경원·제임스 앤드류 머피·정다미·이재용·최재식)을 합친 숫자다.
이 중 박기덕, 최내현, 김보영, 권순범, 제임스 머피, 정다미, 최재식은 이번 주총에서 새로 추천된 이사 후보에 포함돼 있다. 이를 제외하면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10명 이사가 직무를 수행 중이다.
여기에 MBK·영풍 측이 새로 추천한 △사외이사 권광석, 김명준, 김수진, 김용진, 김재섭, 변현철, 손호상, 윤석헌, 이득홍, 정창화, 천준범, 홍익태, 김태성에 △기타 비상무이사 강성두, 김광일, 김정환, 조영호까지 추가 선임되면 총 27명에 이르는 거대 이사회가 탄생한다.
이에 고려아연은 지난 18일 ‘의결권대리행사권유에 관한 의견표명서’를 공시하고 “권유자(영풍) 측은 회사 이사회 운영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경영권 장악만을 위해 무려 17명 이사후보를 추천했다”며 “영풍 측이 추천한 이사 후보가 추가 선임될 경우 이사회 규모가 27명까지 늘어나며,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대하고 비효율적 이사회’가 구성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사회가 지나치게 비대화될 경우 이사의 책임과 권한이 약화되고 이사회의 심의기능이 저해될 수 있다”며 “국민연금 및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 등의 권고를 반영해서 이사 수를 19인으로 제한할 필요성이 있는 바, 제2-1호 의안에 대한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 MBK, 국민연금기금 운용방향 안 맞는다는 지적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이 어느 쪽에 향할지 주목된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1월 임시 주총에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제안한 집중투표제 도입에 찬성표를 던졌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지난 7일 집중투표제 안건의 효력이 유지되는 게 맞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이번 정기 주총에서는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신임 이사진이 선임된다.
‘집중투표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고, 이를 원하는 후보에게만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투표 방식이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의결권을 특정 이사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이 경우 MBK·영풍 연합보다 지분율이 낮은 최 회장 측에 유리하다.
최 회장이 일부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면 더 낮은 지분율을 보유하고도 MBK 측이 추천한 이사의 이사회 진입을 막을 수 있어서다. 이 경우 MBK 연합이 과반에 가까운 지분을 갖고 있어도 이사회를 장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MBK의 일부 운용전략이 국민연금기금 운용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던 점이 이번 수책위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국민연금은 MBK가 결성하는 6호 블라인드펀드에 약 3000억원을 출자하면서, 계약서에 ‘적대적 인수합병(M&A) 투자 건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 북미 최대 연기금, 고려아연 경영진 ‘안건 찬성’
외국계 기관 투자자들 표심도 이번 주총의 주요 변수다. 외국계 기관투자자들은 고려아연 지분 약 7%를 보유하고 있어, 이번 주총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캘퍼스·CalPERS)와 캘리포니아 교직원 연금(캘스터스·CALSTRS)는 ‘이사 수 상한’과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선임’ 등 기존 고려아연 경영진이 제시한 정관 변경 안건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캘스터스는 고려아연 이사회가 추천한 후보 5명 가운데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찬성했다. 사외이사 후보 중에는 △김보영 △제임스 앤드류 머피 △정다미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또 MBK·영풍이 추천한 17명의 후보 중에선 5명을 지지했다. 다만 강성두 영풍 사장과 김광일 MBK 부회장 선임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절충적 입장을 보였다. ISS는 고려아연이 추천한 이사 7명 전원을 반대했고, 영풍·MBK가 추천한 17명 중 4명만 찬성했다.
또한 ISS는 영풍·MBK의 이사회 장악을 견제하기 위해 ‘이사 수를 19인 이하로 제한하는 정관 변경안’에는 찬성했다. 반면 감사위원 선임 등 지배구조(거버넌스) 개선 측면에서는 영풍·MBK 측에 힘을 실었다.
글래스루이스도 고려아연 기존 이사회가 제안한 ‘19인 이하 이사 수 상한 설정’ 등 정관 변경 안건에 찬성했다.
다만 글래스루이스는 최 회장과 고려아연 경영진이 지난 1월 임시주총 하루 전 상호주 의결권 제한 구조를 통해 영풍의 고려아연 의결권을 제한한 것을 놓고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고 경영권 장악만을 우선시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