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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독일에서는 우주선 발사를 연상시키는 카운트다운 후 폭스바겐의 첫 ‘파워데이’ 행사가 열렸다. 프리젠테이션 내내 네온사인이 흐르고 각종 그래프와 차트가 등장했다. 6년 전 유해가스 배출량을 조작했다는 이른바 ‘디젤게이트’로 망신살이 뻗쳤던 폭스바겐이 배터리 독립을 선언하며 전기차 1위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을 밝히는 자리였다.
◇“테슬라 제치겠다” 호언장담이 주가 견인
폭스바겐이 미래차 시장의 맹주로 군림하겠다며 자신감 넘치는 목표를 제시하자 FT는 “늙은 개가 새로운 묘기를 배웠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늙은 개에겐 새로운 묘기를 가르칠 수 없다(You can‘t teach an old dog new tricks)”는 유명한 영국 속담을 뒤집어 빗댄 것. 심지어 FT는 “폭스바겐은 새로운 테슬라”라며 전기차 분야에서 ‘정권교체(Regime change)’가 가능할지 모른다고 내다봤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는 시장을 폭스바겐이 성공적으로 공략했다고 FT는 평가했다. 투자계획을 내세우며 호소한 지난날의 뼈아픈 실패가 교훈이 됐다.
지난해부터 폭스바겐은 전기차 구상을 밝혀 왔지만 시장은 냉담했다. 2025년까지 전기차 플랫폼에 350억유로(약 46조원)를 투자하고 2030년까지 순수하게 배터리로만 가는 전기차를 70종 내놓겠다는 계획에도 주가는 잠잠했다. 지난 1월 테슬라 시가총액이 8370억달러를 넘는 동안 폭스바겐은 1000억달러를 밑도는 수준이었다.
달라진 폭스바겐은 거침없이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헤르베르트 디스 최고경영자(CEO)가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선두 전기차 기업에 오르겠다고 공언하면서다. 기한도 4년 뒤인 2025년으로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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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호언장담으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곤 했다. 지난 2018년 테슬라가 생산량을 못 맞춰 애초 약속했던 것보다 모델3 유럽 판매가 늦어지는가 하면 6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내던 때, “상승 국면이 코앞”이라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켜온 것이다. 실제 시장에도 그 자신감이 통했다. 당시 뉴욕타임스(NYT)는 “월가는 여전히 테슬라 실적보다는 머스크의 말을 더 믿고 싶어하는 분위기”라고 전하기도 했다.
테슬라를 제치고 전기차 시장 1위에 오르겠다는 폭스바겐의 야심찬 목표에 시장은 뜨겁게 반응했다. 17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 상장된 폭스바겐 주식예탁증서(ADR)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29.25% 오른 주당 42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2018년 7월 이후 최고치다. 6년만에 독일증시에서 시가총액 1위 자리도 탈환했다. 프랑크푸르트 시장에 상장된 폭스바겐 우선주가 11% 올라 기업가치가 1660억달러(약 187조원)를 넘어서면서다.
영국계 헤지펀드 랜스다운파트너스의 퍼 르캔더 펀드매니저는 “2021년은 테슬라가 아닌 전통 (자동차) 강자들이 약진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폭스바겐이 잠재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가치에 거래되고 있다”고 주가 상승을 전망했다.
반면 테슬라는 유동성 장세가 지나고 나면 거품이 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이후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 기업들이 죽을 쑤는 동안기술기업들이 시장에 넘쳐나는 자금 덕에 손쉽게 주가를 끌어올렸지만 경제가 정상 궤도로 올라서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란 분석이다.
다른 의견도 있다. 웨드부시 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테슬라 주가가 563달러까지 떨어진 지난 8일 “(주가 급락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며 “전기차 시장이 확장하면 (테슬라) 시가총액은 1조달러에 달할 것”이라며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전히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에서 독보적인데다, 중국에서의 수요가 늘면서 주가도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골드만삭스도 최근 테슬라 주가가 20% 가량 추가 상승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