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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과의 관세협상을 지시하면서 베센트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미국 대표로 임명했다. 이후 베센트 장관은 자신의 엑스(X, 옛 트위터) 계정에 이 사실을 확인하며 “관세 비관세 장벽, 통화문제, 정부보조금 등을 둘러싼 생산적인 대화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에서도 외환 정책을 다루는 베센트 장관이 협상대표가 된 사실에 주목했다. 제조업 부활을 꿈꾸는 미국이 관세 협상을 지렛대 삼아 달러 가치 하락을 유도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85년 미국, 영국, 프랑스, 서독, 일본 등 5개국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여 달러 약세에 합의한 ‘제2의 플라자 합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치열한 협상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관세·비관세 장벽과 달리 환율은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측면이 있다고 봤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 1년동안 1달러=140~160엔 사이에서 움직여왔다. 낮은 엔화가치는 일본 내 수입물가를 끌어들여 최근 일본 내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지난해에도 여러 차례 엔화 매수 개입을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적절한 엔화 가치 상승은 일본으로서도 바라는 바다.
다만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1985년 9월 플라자합의 당시보다 상황은 복잡하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외환시장에서 현물 매매액은 2004년 하루 6300억달러에서 2022년 2조 1000억달러로 증가했다. 일본에서는 1998년 외환법 개정에 따라 개인도 외환거래가 자유화되는 등 시장 참여자가 플라자 합의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플라자 합의 때 환율 개입 규모는 한 달여 동안 세계적으로 100억달러 정도였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작년 4월 29일 일본 정부의 역대 최대 엔 매수 개입 당시 규모는 5조9000억엔(약 370억달러)에 달했다. 달러 약세를 유도한 뒤 정착시키기 위한 허들은 높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속내도 복잡하다. 미국산 상품 경쟁력 상승을 위한 달러 약세 상승은 원하지만, 달러 패권을 놓치고 싶어하지는 않아 한다. 베센트 장관 역시 여러 번 인터뷰를 통해 “강달러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온전히 유지되고 있다”며 “우리는 달러가 강력해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특히 냉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85년과 미중 패권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은 다르다. 이날 뉴욕채권 시장에서는 글로벌 국채벤치마크인 10년물 국채금리가 전 거래일 대비 21.2bp(1bp=0.01%포인트) 급등한 4.203%를 기록했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중국의 매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잇따른 고율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역시 보복관세에 나선 시점에서 중국이 미국국채를 매도하는 것으로 보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으로 지명된 스티븐 미란이 쓴 ‘글로벌 무역시스템 재편을 위한 유저 가이드’에서는 “다른 나라들이 달러, 단기 국채, 심지어 금까지도 장기 또는 영구적인 달러표시 국채(perpetual dollar bonds)로 교환하도록 ‘권장’하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물론 다른 나라들의 돈을 사실상 무기한 빌려 쓰겠다는 이 발상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일본과의 협조는 트럼프 행정부의 환율 정책 구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가장 먼저 논의해야 할 파트너임은 틀림없다.
베센트 장관은 지명자 시절 한 팟캐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지금 우리가 거대한 재편 한가운데 있으며 브레턴우즈 체제(금 대신 달러화를 국제결제에 사용하도록 합의한 국제통화체제)의 재편이 글로벌 정책과 무역 측면에서 다가오고 있다고 강하게 느꼈다”며 “나는 그 재편에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