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세계 최대 전기차업체인 테슬라(Tesla)는 참 알쏭달쏭한 기업 중 하나입니다. 특정 기업이 이렇게도 열광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것도, 아직까지 안정적인 흑자구조를 달성하지 못했는데도 주가가 이토록 높다는 것도 그렇고,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일런 머스크라는 최고경영자(CEO)의 행태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분야에서도…테슬라의 저조한 ESG 스코어
최근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는데요. 이 ESG 관점에서도 테슬라는 일관된 잣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기차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서 클린에너지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높은 ESG 스코어를 받고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친환경 솔루션 기여도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는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정도가 테슬라에 후한 ESG 점수를 매기고 있을 뿐 다른 기관들은 그리 좋지 않은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실제 파이낸셜타임즈스톡익스체인지(FTSE)지수를 산출하는 기관인 FTSE러셀과 ESG 평가기관인 서스테이널리틱스는 지배구조에서의 취약성에 주목하며 테슬라에 낮은 점수를 매기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 말 뉴욕증시를 대표하는 주가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 신규 편입된 테슬라는 이 지수를 만드는 S&P다우존스인덱스로부터는 더더욱 형편없는 ESG 점수를 받았습니다. S&P다우존스인덱스는 매년 지수 편입 기업들의 ESG 스코어를 산출하는데, 테슬라는 작년 ESG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고작 22점을 받는데 그쳤습니다. 30점을 받은 제너럴모터스(GM)는 물론이고 대부분 화석연료 차량을 만들고 있는 자동차업체들과 비교해도 거의 최하위권이었죠.
S&P다우존스인덱스는 이 ESG 스코어를 기준으로 S&P500지수의 하부 지수인 S&P500 ESG지수에 들어갈 기업을 정하는데요. 이 정도 점수라면 다음 달 예정된 정기 지수 리밸런싱(재조정)에서 테슬라가 편입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현재 S&P500지수에 편입된 500개 기업들 가운데 60% 정도 295개 기업이 포함돼 있는데, 테슬라의 점수는 500곳 중 436위입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사회책임분야에서 테슬라는 100점 만점에 6점이라는 최악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사회 자선활동이나 인적자원 개발 등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구요. 또 개인정보 보호나 혁신 관리 등에서 저조한 점수를 받으면서 지배구조분야에서도 49점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거의 완벽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테슬라가 환경분야에서도 100점 만점에 고작 28점을 받는데 그쳤다는 점입니다. S&P다우존스인덱스는 이에 대해 “테슬라가 내놓는 환경 보고서의 투명성이 떨어지고, 회사의 기후변화 관련 전략과 환경정책 및 관리가 체계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물론 해를 거듭할수록 테슬라가 다소 나아진 ESG 스코어를 보이곤 있지만 뭔가 근본적인 체질 변화가 없다면 회사 몸집(=시가총액)만 불었지 내실(=ESG 스코어)은 형편없는 기업이라는 오명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이번 4월 리밸런싱에서 ESG지수에 편입되지 못한다면, 테슬라는 버크셔 해서웨이와 존슨앤존슨, 월트디즈니를 앞질러 `ESG지수에 편입되지 못한 최대 시총 기업`에 오르게 됩니다.
◇잃을 것뿐인 비트코인 투자…ESG에 감점요인
이런 가운데 최근 15억달러라는 거액을 들여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전기차를 비트코인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한 머스크 CEO의 결단이 테슬라의 ESG 스코어를 더 갉아 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테슬라는 자본 수익성을 높이고 테크놀러지 친화적인 젊은층 고객을 더 유입할 수 있다는 이점을 누릴 수 있겠지만, 득(得)보다 실(失)이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알다시피 비트코인은 대단히 에너지 집약적인 자산입니다. 채굴(Mining)과 결제(Transaction)하는데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시킵니다. “비트코인은 기후문제에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의 비판은 바로 이런 부분을 지적한 것이죠.
실제 케임브리지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연간 약 116테라와트의 전기를 사용하는데, 이는 네덜란드나 인구 2억1700만명의 파키스탄보다 많은 양입니다. 또한 탄소 배출량에서도 뉴질랜드, 네덜란드, 그리스, 아르헨티나에 버금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미국 투자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테슬라가 15억달러를 비트코인에 투자한 것은 연간 180만대의 휘발유 자동차가 배출하는 탄소 발자국과 같은 수준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또 비트코인으로 전기차 한 대를 파는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 사용량은 신용카드 거래 70만건을 처리하는 사용량에 버금간다는 겁니다.
그뿐 아니라 비트코인에 대한 사회적 평판으로 인해 사회분야에서의 감점 요인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각국 금융당국은 비트코인이 돈세탁이나 범죄 등에 악용될 수 있는 소지를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며,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마이닝 풀 역시 주로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인권문제에서 눈총을 받고 있는 중국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이 재평가를 앞두고 있는 테슬라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섣불리 예단할 순 없지만, 전문가들의 우려는 새겨 들을 만 합니다. 아타나시오스 사로파기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상장지수펀드(ETF) 분석가는 “비트코인은 에너지 효율성이나 온실가스 배출 등 환경적 요인은 물론이고 자금세탁이나 각종 사기, 소비자 보호 문제 등 사회적 요인에서도 테슬라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영국의 자산운용사인 테튼인베스먼트 매니지먼트의 로타 멘텔 CEO 역시 “자동차회사가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CEO가 독자적으로 결정해 버리는 방식은 환경이나 지배구조 관점에서도 투자자들을 걱정스럽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오죽하면 월가에서도 `테슬라 강세론자`로 손꼽히는 웨드부시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조차 “테슬라는 작년에 7억21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벌었는데, 비트코인에 투자한 이후 벌써 10억달러에 이르는 평가이익을 냈다”면서 “전기차를 만드는 것보다 비트코인에 투자해서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건, 테슬라라는 기업에 대한 평가를 달라지게 할 수 있다”고 걱정할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