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 최종 결정 직후 첫 회동…합의 이를까
11일 재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측 고위 임원진은 지난 5일 서울 모처에서 만나 소송 관련 협상을 재개했다. 지난달 10일(현지시간) ITC가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 결정을 내린 이후 이뤄진 첫 만남이었다.
ITC의 최종 결정 관련 판결문 전문이 공개된 직후 LG에너지솔루션은 5일 컨퍼런스콜에서 “SK이노베이션 측에 협상 재개를 언급했지만 한 달여 동안 어떤 반응이나 제안이 없었다”고 말했다. 공개 발언 이후 양측의 만남이 성사된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에 쏠리는 관심도 양측 모두에게 부담이다. 지난 7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유튜브 방송 ‘삼프로TV’에 출연해 연초에 이어 다시 양사 합의를 촉구했다. 정 총리는 “전기차 산업을 키워 미래 먹거리로 만들어야 하는데 내부에서 싸우느라 서로 수습을 못하고 있다”며 “합의를 해주십사 당부하고 권유한다”고 말했다.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는 사실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합의에 이르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어서다. ITC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60일 간의 검토(Presidential Review)를 거쳐 승인하면 확정된다. 영업비밀 침해 건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지만 SK이노베이션엔 가능성이 남아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이날 이례적으로 이사회 산하 감사위원회의 공식입장을 공개한 것도 거부권 행사 여부를 앞두고 ‘여론전’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과도한 합의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해 LG에너지솔루션이 제시한 합의금 수준이 높음을 간접 시사했다. SK이노베이션이 합의금 수준을 조 단위로 높였지만 LG에너지솔루션이 제안한 합의금 수준과 격차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열린 확대 감사위원회 회의에서 SK이노베이션 감사위원회는 “경쟁사의 요구 조건을 이사회 차원에서 향후 면밀히 검토하겠지만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지속할 의미가 없거나 사업 경쟁력을 현격히 낮추는 수준의 요구 조건은 수용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연방영업비밀보호법에 근거한 제안”이라며 “가해자 입장에서 무리한 요구라 수용 불가라고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ITC 결정 놓고도 여전한 해석 차이
더욱이 양측은 ITC 최종 결정을 두고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감사위원회는 “소송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방어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미국 사법 절차 대응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패소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이번 패소 이유로 영업비밀 침해가 아닌 경험 부족을 꼽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C 판결문 전문에 SK이노베이션이 △BOM(원자재부품명세서) 정보 △선분산 슬러리 △음극·양극 믹싱 및 레시피 △더블 레이어 코팅 △배터리 파우치 실링 △지그 포메이션(셀 활성화 관련 영업비밀 자료) △양극 포일 △전해질 △SOC(충전율) 추정 △드림 코스트(특정 자동차 플랫폼 관련 가격 및 기술을 포함한 영업비밀 자료) 등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22개를 침해했다고 적시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인식 차이가 아쉽다”며 “증거를 인멸하고 삭제하고 은폐한 측에서 이러한 결정을 인정하는 것이 합의의 시작일 것”이라고 지적한 배경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경쟁사가 진정성 있게 협상 테이블에 와서 논의할 만한 제안을 하고 협의를 한다면 현금, 로열티, 지분 등 주주와 투자자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다양한 보상방법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