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로 읽는 암호화폐]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실험 성공할까

이정훈 기자I 2021.06.10 18:10:06

"비트코인 법정화폐로"…대통령 선언 나흘만에 의회 통과
블록체인 결제社 스트라이크 통해 인프라 구축 `일사천리`
2001년부터 달러화 법정화폐로…연준 돈풀기에 경제 불안
GDP 20%가 해외 근로자 송금…비트코인으로 국고 증대
채굴 등 관련산업 진흥 착수…달러보유 선호 억제가 변수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전체 인구가 645만명에 불과한, 중앙아메리카에서도 멕시코와 과테말라, 온드라스, 니카라과 등에 끼어있는 자그마한 나라인 엘살바도르가 거대한 실험에 나섰습니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비트코인이라는 가상자산을 법정화폐로 공식 채택함으로써 기울어가는 경제를 바로 세워 보겠다는 실험 말입니다.

시작은 이랬습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상자산 이벤트인 `비트코인 2021 콘퍼런스`에서 화상으로 등장한 나이브 부켈레 엘셀바도르 대통령이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받아 들이고자 한다”면서 “이를 위한 법안을 다음 주 중에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그리고 이미 오랫동안 준비한 듯 그는 사흘 뒤인 8일에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승인하겠다는 법안을 곧바로 의회에 제출했고, 이를 받은 의회는 하루 만인 9일 밤 본회의를 열어 출석 의원 84명 중 62명의 압도적인 찬성 표로 이를 일사천리로 가결했습니다.

이날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받아들이면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공식적인 경제 밖에 있는 이들에게 금융 접근성을 제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고, “중장기적으로는 이 작은 결정이 인류를 좀더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부켈레 대통령의 이런 얘기는 결코 허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는 이미 미국의 모바일 및 블록체인 결제업체인 스트라이크(Strike)라는 유망 스타트업과 손잡고 자국 내에서 실생활에 비트코인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에도 이미 돌입했습니다.

스트라이크는 지난 3월에 이미 엘살바도르에서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은 업체로, 비트코인이 실생활에서 사용되기 힘든 이유 중 하나인 더딘 거래 처리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해주는 확장성 개선 기술 중 하나인 라이트닝 네트워크 결제 플랫폼을 만드는 기업입니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란 실제 비트코인 블록체인이 아닌 별도의 사이드 체인을 활용해 빠르고 저렴하게 거래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을 말합니다.

잭 말러스 스트라이크 창업자는 “비트코인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들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준비자산이며 탁월한 통화 네트워크”라고 평가하면서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것은 법정화폐 인플레이션에 따른 잠재적인 충격으로부터 개발도상국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엘살바도르도 지난 1892년 콜론(Colon)이라고 하는 자체 법정화폐를 만들어 100년 이상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자국 내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범죄조직 창궐 등으로 인해 지하경제 규모가 비대하게 커진데다 지나친 통화 발행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으로 콜론이 신뢰를 잃자 지난 2001년부터 아예 미국 달러화를 법정화폐로 쓰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하에서 대규모 통화팽창 기조를 이어가자 엘살바도르 내에서는 더 급격한 화폐 인플레이션이 나타났습니다. 실제 `비트코인 2021`에서도 부켈레 대통령은 “역대 전례 없는 통화팽창으로 인해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며 그 책임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돌렸습니다. 그러면서 “연준의 통화정책이 엘살바도르의 경제적 안정을 더욱 더 해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사실 엘살바도르는 전체 경제에서 대외송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큰 나라입니다. 미국에서만 200만명 가까운 자국민들이 일하며 번 돈을 본국으로 보내오고 있구요. 이렇게 해외 노동자들이 보낸 송금이 지난 2019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0%를 넘었지요.

주요 국가의 GDP대비 해외송금 비중


문제는 힘들게 번 돈을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게 너무 불편하다는 겁니다. 주로 웨스턴유니언과 같은 해외 송금업체를 이용하는데, 규제가 많아 돈 보내는 게 불편한데도 수수료까지 높다고 합니다. 엘살바도르 내에만 웨스턴유니언 지점이 500곳 이상이라고 하지만, 오죽했으면 번 돈을 모아뒀다가 가끔씩 비행기를 타고 직접 돈을 가져다주는 일이 빈번하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스트라이크의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활용한 송금이 도입될 텐데, 이런 방식이 될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열심히 일해서 달러화를 번 노동자들은 이를 스트라이크에 보내면, 스트라이크는 이 돈으로 비트코인을 사서 엘살바도르 중앙은행으로 비트코인을 이체합니다. 이 비트코인은 엘살바도르 중앙은행에 준비금으로 쌓이고, 돈을 받는 가족은 중앙은행으로부터 비트코인 또는 달러화를 찾아가서 쓰면 됩니다. 비트코인과 달러화 간의 교환 비율(=환율)은 자유시장에서 결정됩니다.

이럴 경우 송금이 편리해지고 수수료도 종전에 비해 10분의1도 채 안되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일하는 엘살바도르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보내오는 돈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준비금이 늘어나고 이는 달러 준비금이 는다는 얘기가 됩니다. 특히 비트코인 가격이라도 더 뛴다면 그 준비금이 더 불어날 수도 있구요. 이는 엘살바도르 정부의 재정여력이 좋아져 재정지출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해줄 겁니다.

일단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전 국민 가운데 무려 70% 가까운 인구가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현금, 그것도 미국 달러화로 거래되고 있는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 수요는 확실히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스트라이크가 엘살바도르에서 출시한 모바일 결제 앱도 출시 두 달여 동안 하루 2만명 가까이 씩 사용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은행 계좌 조차 가지지 못했던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저축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이제 비트코인 월렛을 가지게 되면 저축률이 크게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현금 보유에 따른 분실이나 가치 하락의 리스크도 상쇄할 수 있구요. 더구나 저축으로 이자 수익을 누릴 수 있으니 가계 가처분소득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법정화폐가 된 비트코인으로는 세금이나 각종 공과금도 납부할 수 있습니다. 또 기업이나 상인들도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비트코인으로 매길 수 있습니다. 아울러 비트코인이 화폐로 인정되다보니 비트코인으로 제품값을 치르거나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사고 팔아도 양도소득세를 전혀 물지 않아도 됩니다.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과 관련된 글로벌 기업들이 엘살바도르로 몰려 들어 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이 법정화폐로 인정받은 다음 날인 10일 곧바로 국영 지열전력회사에 비트코인 채굴을 위해 화산 에너지를 활용한 탄소배출 제로(0)의 설비를 제공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밝은 면만 있진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송금이나 환전 과정에서의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 것인가, 이 과정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얼마나 많이 비트코인을 사용하도록 유도할 것인가 하는 것이 숙제가 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달러화만 보유하고자 하면 비트코인은 자국 중앙은행에만 가득 쌓이게 될 것이고, 이는 비트코인 가격 변동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울러 전 세계에서 조직폭력과 범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이라고 해서 이로 인한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낼 수 있을 지도 지켜봐야 합니다.

그러나 이 엘살바도르에서의 거대한 실험이 이 나라에서 실패한다 해도 다른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현금 없는 사회를 채워 나갈 가상자산, 특히 자국 통화의 신뢰가 무너진 국가들에서 그 신뢰를 채워 갈 비트코인의 앞날은 충분히 기대해 봄 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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