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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증인신문에 앞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유도신문을 제지하는 등 재판장님께서도 전향적으로 소송지휘권을 행사해주길 바랍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판사석이 아닌 피고인석에 앉은 임종헌(60·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2일 정다주(43·31기)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 전 재판장인 윤종섭(49·26기) 부장판사에게 한 당부의 말이다. 그는 이날 `셀프 변론`으로 법정에서 소송을 좌지우지했다. 재판장에게 당부는 물론 검찰 증인신문에서도 “유도신문에 해당한다”거나 “질문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며 제동을 걸었다. 참다못한 검찰이 “신문이 잘못되면 재판장이 제지할 수는 있어도 피고인이 제동을 건다면 이게 대체 누구의 소송인지 혼란스럽다”고 재판부에 항의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지난 15일에는 검찰이 오스트리아 대사관 파견 추진 계획 문건을 공개하며 외교부와 법원행정처가 법관 파견에 대가관계가 있었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은 “비유하면 남녀가 썸을 타는데 (검찰은) 이걸 확대해석해 불륜관계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말을 마치고서는 윤 부장판사를 몇 초간 응시했다.
법조계에서는 임 전 차장의 이런 행태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재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아직도 자신이 상급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검찰 관계자도 “같은 피고인이어도 임 전 차장은 자신이 국민과 다르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장과 연수원 기수가 열 기수 차이가 나는 임 전 차장이 재판마다 법리를 지적하거나 소송 지휘를 당부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재판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임 전 차장이 고위 법관 출신이 아니었다면 법정에서 검찰의 USB 압수수색을 두고 2시간 동안 열변을 토하는 모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임 전 차장이 지금 재판에서 보이고 있는 행동들은 일반 국민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그가 고위 법관 출신으로 누리는 특혜를 `피고인의 방어권`이라는 그럴 듯한 논리로 포장한 것과 다름없다. 만약 아니라면 임 전 차장이 20년이 넘는 법관 경력 기간 동안 피고인 방어권에 발 벗고 나서지 않고 하필 지금에서야 강조하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