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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2년 경기고를 졸업한 뒤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1956년 대학을 마친 뒤 편집기사로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1961년 영화 ‘5인의 해병’으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으로 이듬해 대종상 신인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모란이 피기까지는’(1962), ‘맨발의 청춘’(1964), ‘불타는 청춘’(1966), ‘대괴수 용가리’(1967), ‘언덕위의 하얀집’(1972) 등을 연출하며 임권택, 김수용 감독과 60~70년대 한국영화계를 이끌었다.
1977년 영화감독에서 은퇴한 뒤 1979년부터 서울예대 영화과 교수를 지냈다. 대종상 심사위원 및 집행위원, 공연윤리위원회 심사위원 등을 맡았다. 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임됐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연극·영화·무용 분과회장을 맡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안숙영 씨와 아들 김영재, 김영기 씨, 딸 김은아 씨가 있다.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11시이며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02-2227-75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