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하늘길 대란’… 위약금 덫에 갇힌 여행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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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록 기자I 2026.03.10 11:34:05

유럽·아프리카 노선 취소율 30% 육박
한때 항공권 가격은 최고 900% 폭등
업계 “3월 출발 100% 환불” 파격 대응
단 ‘3단계 경보’ 법적 의무 없어 분쟁 불씨
정부는 전세기 비용 이용객에게 받아
전문가들 “위기 상황 맞는 제도 개선 시급”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중동발(發) 전운이 확산하면서 글로벌 항공·여행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가성비’ 유럽 여행의 대명사였던 중동 경유 노선은 기피 대상 1호로 전락했고, 안전을 위해 여행을 포기하려는 소비자들은 수백만 원에 달하는 ‘위약금 덫’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반면 여행사들은 “현지 업체에 자금이 묶여 고사 직전”이라면서도 도의적 차원의 전액 환불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있어 정부의 무능한 중재가 사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이에 맞선 이란의 보복으로 중동 하늘길이 사실상 마비된 가운데 5일 인천국제공항에 에미레이트 항공 여객기가 계류돼 있다.


‘하늘의 실크로드’가 ‘공포의 항로’로

두바이나 아부다비 등 중동 주요 거점은 그간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이른바 ‘하늘의 실크로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이란-이스라엘 간 충돌로 영공 폐쇄와 항로 우회가 일상화되면서 경유지 자체가 거대한 위험 지대로 돌변했다.

전 세계적으로 2만 3000편 이상의 항공편이 취소된 가운데, 중동을 우회하려는 수요가 몰리며 항공권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전쟁 직후 영국 런던에서 싱가포르로 향하는 편도 이코노미석 가격이 평소보다 900% 급등한 약 1250만 원까지 치솟는 등 ‘항공 대란’이 현실화됐다. 국내에서도 중동 경유 노선의 취소율이 30%에 육박하며 현장은 패닉 상태다.

소비자의 원성이 높아지자 하나투어, 모두투어, 노랑풍선 등 국내 주요 여행사들은 3월 출발 중동행 및 경유 상품에 대해 취소 수수료 없는 ‘100% 환불’이라는 이례적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한항공과 에티하드, 카타르 항공 등도 특정 기간 내 출발편에 대한 무료 환불에 동참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여행사의 ‘눈물겨운 자구책’일 뿐이다. 패키지 여행 특성상 호텔과 가이드 비용 등을 수개월 전 송금하는데 현지 업체들이 환불을 거부할 경우 그 손실은 고스란히 여행사가 떠안아야 한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정부가 전세기를 띄우면 승객에게 비용을 다 청구하지만, 여행사는 사비를 들여 체류객 150여 명에게 숙식과 귀국편을 무상 지원했다”며 “정부가 할 일을 민간이 대신하고 있는 꼴”이라고 하소연했다.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는 여행객
‘철수 권고’에도 의무 없는 약관

불안감에 여행자 보험 가입은 폭증하고 있으나 실효성은 낙제점이다. 국내 표준 보험 약관상 ‘전쟁, 내란’ 등은 보상 제외 항목(면책)이다. 외교부가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 등 주요 국가에 대해 여행경보를 3단계(철수 권고)로 상향했지만 소비자들의 시름은 여전하다.

현행 공정거래위원회 표준약관상 여행 금지인 ‘4단계’는 환불이 의무지만, 이번에 발령된 ‘3단계’는 면제가 권고 사항일 뿐 법적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해 손해를 감수하는 대형사와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영세 업체 간의 ‘환불 격차’가 발생하며 소비자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교적 수사에 치중한 정치적 경보와 별개로 현실적 위험을 반영한 ‘여행 분쟁 특화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고 제언한다.

국지적 분쟁 시 ‘2.5단계’와 같은 과도기적 구간을 신설해 위약금을 50% 수준으로 분담하도록 유도하거나, 정부가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 현지 업체와의 환불 협상을 중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는 사이 소비자와 기업 간의 불신만 쌓이고 있다”며 “위기 상황에 걸맞은 탄력적 제도 운용과 업계에 대한 실질적인 보조금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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