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人]미국엔 '통합' 외부엔 '패권'..트럼프의 두 얼굴

이준기 기자I 2018.01.31 16:32:37

첫 연두교서..민주당·공화당에 "손 내밀겠다"
도전하는 중국·러시아.."핵무기 현대화·재구축"
수위 낮췄지만..대북압박 최고수준 유지 재천명
"경제적 굴복의 시대 끝났다"..무역전쟁 불사

사진=AP/뉴시스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의 첫 연두교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통합’이다. ‘하나의 미국, 하나의 팀, 하나의 가족’ 등의 수사를 통해 통합 메시지를 발신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취임 후 1년간 각종 갈등과 대립을 조장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확 변한 것이다. 반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으며 과거와 달리 비판 수위를 낮추긴 했지만, 북한을 “타락한(depraved)” “불길한(ominous)” 정권이라고 규정하며 ‘최고 수준’의 대북압박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 대외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을 물리치는 한편, ‘미국 우선주의’ 기치를 내건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안으로는 인자한 아버지의 얼굴을, 밖으론 강력한 패권국 수장의 모습을 보인 전형적인 내유외강(內柔外剛) 전법을 구사한 셈이다. 트럼프의 변신을 두고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특검 수사의 칼날이 자신을 정면 겨누는 상황에서 정권 심판 격인 11월 중간선거까지 다가오자, 연두교서를 발판으로 한 ‘인기몰이’를 통해 국정운영동력을 확보하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사진=AP/뉴시스
◇“지구상 어떤 국민도..” ‘통합 메시지’ 발신 주력

트럼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진행한 연두교서에서 “우리는 함께 안전하고, 강력하며, 자랑스런 미국을 건설하고 있다”며 “배경과 피부 색깔, 신념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에 손을 내밀겠다”고 ‘통합’을 밑바탕으로 한 초당적 협력을 촉구했다. 집권 2년차을 맞아 ‘국정 기조’의 변화를 예고한 것으로 풀이됐다. “미국민 역시 드리머(dreamer)이기 때문”이라는 표현을 두고도 그간 트럼프 대통령이 반(反) 이민정책만을 관철해왔다는 점에서 ‘통합’의 메시지로 읽혔다. 특히 “지구상 어떤 국민도 미국민처럼 이렇게 두려움 없이 과감하며 결의에 차 있지 않다. 산이 있으면 넘고, 경계가 있으면 통과할 것”이라며 평소 답지 않은 발언들을 잇따라 쏟아냈다. 이와 관련, 미 워싱턴포스트(WP)는 “가장 대통령 연설다운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중국.러시아 등 외부에는 패권국 대통령다운 ‘강인함’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우리는 불량 정권과 테러 그룹, 우리의 이익과 경제, 가치에 도전하는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경쟁국들에 직면해 있다”며 “이들 위험에 맞서면서 우리는 나약함이 갈등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이며 필적할 수 없는 힘이 우리의 방어를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임을 알았다”고 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방어의 하나로 매우 강하고 힘있게 해서 어떠한 침략 행위도 억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핵무기를 현대화하고 재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이슬람국가(IS)를 “민간 병원에 폭탄을 설치하는 것과 같은 짓을 하는 테러리스트들” “불법적인 적군의 부대원들이자 악마” 등으로 규정하며 철퇴를 약속했다.

사진=AP/뉴시스
◇北비판 수위 낮아졌지만..대화의 ‘대’자도 안 꺼내

북한에 대해서도 “곧 우리 본토를 위협할 것이며 우리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의 압박’ 작전을 실시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의 강경 대북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 훈풍이 불고 있지만, ‘대화’의 ‘대’자도 꺼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각에서 제기된 ‘북미대화’가 요원해지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지난해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직후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와 북한 인권단체 나우(NAUH) 지성호 대표의 이름을 직접 거론, 북한이 가장 꺼려하는 ‘인권문제’를 지적하는 데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다만, 수위는 대체적으로 낮아졌다는 평이다. CNN이 보도한 ‘눈이 번쩍 뜨이게 할 만한 대북 압박의 표현’은 없었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대북 군사옵션 사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경제정책의 기조는 ‘보호무역주의’에 방점을 찍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적 굴복의 시대는 끝났다”며 “우리는 나쁜 무역협정을 고치고 새로운 협정들을 협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또 “강력한 우리의 무역규정 이행을 통해 미국의 노동자들과 미국 지적 재산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물론 유럽연합(EU)으로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무역전쟁’에서 뒷걸음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 더해 내달 제10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까지 앞둔 우리로선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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