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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보다 차별화 관건"..유통업계, '갓성비 PB' 전쟁 사활

윤정훈 기자I 2022.02.09 17:31:46

<쉿!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PB 상품의 비밀>②
가성비 중심 PB에서 프리미엄 PB까지 시장 확대
RMR 한 제품 개발에 6개월 걸리기도..맛·원가구조·마케팅 등 변수 많아
성공 확률 높이기 위해 자체 연구소 역량 강화..소비자 리뷰도 꼼꼼히 반영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 “과거 PB(Private brand, 자체 브랜드) 상품이 가성비 중심이었다면 최근 PB 트렌드는 차별화된 가치를 주는 프리미엄으로 진화했다.”

한 대형마트의 PB 기획 담당 직원은 9일 기자와 통화에서 이같이 밝히고 “소비자의 눈에 못 들어서 단종되는 PB 상품도 있지만 단기 시장을 보고 내놓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다”며 “PB 기획·생산에 관한 노하우가 누적되면서 내부 기준 성공률이 꽤 올라갔다”고 부연했다.

▲삼척중앙시장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전경. (사진=노브랜드)
유통 업계가 PB 상품을 만드는 건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국내 온·오프라인 유통 시장이 성장하면서 경쟁이 가속화됐고 수익성이 좋은 PB는 유통 업계의 필수 먹거리로 자리잡았다. 대형마트의 PB 상품 매출 합계는 5조원이 넘었고 패션 등으로 카테고리를 넓히면 국내 PB 시장은 규모는 10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이 성장한 만큼 과거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그만큼 실패 사례도 많다. 홈쇼핑용 RMR(레스토랑 간편식)을 만드는 유웰데코의 김정희 대표는 “RMR 시장이 활황이라서 성공하는 제품이 많아 보이지만 성과가 좋지 않은 제품도 많다”며 “맛은 기본이고 마케팅 비용과 원가 구조 등 RMR 제품 하나를 만들어 내려면 많은 변수를 신경써야 하다보니 하나의 제품을 개발하는데 6개월 이상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GS25 관계자도 “소비 패턴과 트렌드가 급변하면서 신상품이 주목받는 기간이 지속 짧아지고 있다”며 “롱런할 수 있는 PB 상품 제작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PB 상품은 트렌드에 민감하기 때문에 장수하는 상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이에 대형마트와 편의점은 패션·뷰티 등 트렌드에 민감한 제품보다는 수요가 꾸준한 식음료 PB 상품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자체 PB 개발 조직을 구성해 기획·개발 역량을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로는 이마트의 고급 간편식 PB인 ‘피코크’, 생활용품 카테고리 PB인 ‘노브랜드’가 있다. 2015년 4월 9개 상품으로 론칭한 노브랜드는 지난해 기준 1300여개 상품을 만들 만큼 커졌다. 피코크는 2013년 첫 선을 뵌 이후 이마트의 차별화된 제품군으로 자리매김했다.

피코크는 프리미엄급의 맛과 품질을 내기 위해서 상품개발실(비밀연구소)을 통해 전문가 평가뿐 아니라 고객의 의견까지 들어가면서 노력을 쏟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노브랜드와 피코크의 지난해 매출액 합계는 1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롯데마트 ‘요리하다’, 홈플러스 ‘시그니처’ 등 식품 PB브랜드도 매출 비중이 매년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 모델이 PB 브랜드 시그니처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홈플러스)
편의점 업계도 고품질의 PB 상품 개발을 위해 자체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CU가 2015년 12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상품연구소를 처음 출범시켰고 이후 GS25도 상품개발전략팀과 식품연구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철저한 기획단계를 거쳤지만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해 사라진 브랜드도 셀 수 없이 많다. 이커머스 업체 위메프는 2012년 뷰티PB ‘W.뷰티’를 론칭하고 ‘원데이 콜라겐’ 등 제품을 내놓았지만 반응이 저조해서 사업을 접었다. 이후 2015년 패션 PB브랜드 ‘레드심플’까지 론칭했지만 2년 만에 철수했다.

롯데마트는 한 때 40여개 PB 브랜드를 운영했지만 선택과 집중을 위해 현재는 7개로 줄였다. 가성비 브랜드 ‘손큰’, 의류브랜드 ‘베이직 아이콘(테)’, 중소기업 상생 브랜드 ‘롯데마트랑’, 스포츠 브랜드 ‘스포츠 550’ 등은 지금은 볼 수 없는 브랜드다.

유통 업계는 PB 상품의 성공 조건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한 고객 수요 조사 △상품개발 능력 △유통망 확보 △디자인 등을 꼽는다. 편의점, 대형마트 등은 강력한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서 NB보다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모델이 조선호텔이 개발한 삼선짜장과 삼선짬뽕 밀키트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마트)
최근에는 호텔 업계의 RMR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PB 상품은 개당 가격이 1만원에 달할 만큼 고가지만 프리미엄급 호텔 음식을 즐기기를 원하는 수요를 겨냥한 덕분에 성공을 거뒀다. 조선호텔이 피코크와 손잡고 만든 유니짜장·짬뽕의 누적 판매량은 60만개에 달할 정도로 인기다. 맛은 기본이고 신세계그룹 계열사 내에 SSG닷컴이라는 든든한 유통 지원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코로나19로 성장한 이커머스 업계도 PB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쿠팡을 필두로 마켓컬리, 무신사 등 업체는 PB를 통해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쿠팡의 ‘탐사’와 ‘코멧’ 브랜드는 마스크부터 생수, 물티슈 등 생필품을 판매해 지난해 1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컬리의 PB 브랜드 ‘컬리스’의 지난해 판매량은 2020년 대비 152% 증가했다. 패션 플랫폼 운영사 무신사의 PB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도 2017년 출범해 4년 만에 매출액 1000억원을 돌파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유통업체는 오프라인 점포를 늘리면서 양적 성장을 했다면 이제는 영업이익률을 높이는 질적성장을 해야 한다”며 “온·오프라인 유통업계가 무한 경쟁을 펼치면서 각자 브랜드를 만들기 때문에 강한 브랜드만 살아남는 시대가 됐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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