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부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저녁께 한국에 도착했다. 24일 오후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리는 한-러 상호교류의 해 행사에 참여하고 25일에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할 예정이다.
회담에서는 한러 관계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신북방정책 추진방향, 동북 방역보건협력체 등을 통한 코로나19 극복 대응 협력, 한반도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공동성명은 발표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정 장관과 라브로프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각각 논의사항을 발표하는 공동 발표 형식으로 회담의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문제는 시점이다. 지난 18~19일(현지시간) 미중 ‘앵커리지’ 격돌 이후,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줄세우기가 이뤄지는 모습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의 외교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는 러시아는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7일 미국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살인자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고 러시아는 이에 항의하며 주미 대사를 일시 귀국시켰다.
라브로프 장관은 미중 고위급 회담 직후인 22일 중국 계림을 방문해 이틀간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을 진행했다. 중국으로부터 미중 알래스카 회담 결과 등을 공유받고 대미 대응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23일(현지시간) 양국은 “다른 나라가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고 국내 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라브로프 장관의 방한 몇 시간을 앞두고서다.
외교부는 라브로프 장관의 방한은 본래 지난해였던 한러 수교 30주년 행사가 코로나19로 한 해 미뤄지면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을 걸쳐 한국을 방문한다는 사실 역시 상대국의 외교 일정인 만큼 알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우리 정부가 북한과 중국 문제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라브로프 장관의 방한을 단순한 양국 우호 발전이라는 시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이미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의 ‘약한 고리’로 인식되고 있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18일 “미국은 아시아 순방에서 일본을 전략적 부속물로 꾀어내는 데 성공했다”며 “그러나 한국은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 전략에 있어 약한 고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역시 22일(현지시간) ‘한미 동맹관계에 대한 제언’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중국의 보복을 우려해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고 있다며, 이런 외교전략은 동맹인 미국을 불안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오히려 중국에 대한 취약성을 확대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라브로프 장관이 이번 방한을 통해 중국과 논의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북한이 미국에 대한 협상력 강화를 위해 중국, 러시아와 밀착하는 상황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수 있다.
앞서 노동신문과 신화통신 등 북중 주요매체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구두 친서를 주고받았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적대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조·중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하자”고 강조했다. ‘적대세력’은 미국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 역시 “조선반도의 평화안정을 수호하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해 새로운 적극적인 공헌을 할 용의가 있다”며 화답했다. 특히 “두 나라 인민들에게 보다 훌륭한 생활을 마련해 줄 용의가 있다”고 언급해 대북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해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