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부 요소수 대책회의를 이끈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13일 이데일리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지금은 함께 일한 공무원들을 생각하면 뿌듯한 느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동안 이 차관은 요소수 수급 관련 범부처 합동 대응 회의를 매일 주재하며 범정부 대책을 마련하는 등 이른바 ‘요소수 소방수’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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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두달 전인 지난 10월15일 요소 수출을 규제하고 나섰다. 수출 규제가 알려지자 요소수 품귀로 경유차가 멈추고 물류대란이 일어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국내 경유차는 950만대에 달한다. 산업용 요소수, 비료 생산용 요소까지 부족해져 공급망이 마비되고 전력이 끊기는 블랙아웃까지 우려됐다. 뒷북·늑장대응에 부처 간 엇박자 논란까지 여론은 들끓었다.
당시에는 어느 부처도 총대를 메고 싶지 않은 분위기였다. 들끓는 여론과 업계 아우성에 ‘욕받이’ 역할만 할 것이라는 걱정에서다. 결국 돌고 돌아 경제부총리에게 ‘폭탄’이 떨어졌다.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달 7일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요소수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억원 차관에게는 범부처 요소수 대책을 실시간 총괄하는 중책이 맡겨졌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위기, 마스크 대란을 대응하면서 리스크 관리에 잔뼈가 굵은 이 차관이었지만, 처음에는 막막했다고 한다. 이 차관은 “어느 부처가 도맡아서 대응해야 하는지 쉽게 가르마가 타지지 않았다”며 “이 결과 초기 대응 체계에 구멍이 뚫렸다”고 돌이켰다.
요소수 대책 관련 기관은 기재부, 국무조정실, 외교부, 행정안전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경찰청, 소방청 등 15곳에 달한다. 뚜렷하게 담당 부처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리스크가 터진 것이다.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리스크가 불거진 것도 정부의 초기대응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였다.이 차관은 “과거에는 카드대란, 저축은행 사태 등 금융 리스크가 컸는데, 이번에는 요소수라는 실물 위기가 경제 리스크로 번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요소수 대란은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일상에 영향을 끼치는 리스크”라며 “공급망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제리크스 대응할 특공대 같은 공직 인재 키워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해법은 신속하게, 전방위 대책을 모색하는 것뿐이었다. 기재부는 △중국과의 협의 강화 △수입 다변화 △긴급수급조정조치 시행 △매점매석 단속 등 전방위 대책을 총괄했다. 이 차관 주재로 요소수 수급 관련 범부처 합동 대응 회의를 매일 열고, 요소수 수급 상황과 범정부 대책을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한 줄기 빛이 보인 건 지난달 12일 회의에서다. 이 차관은 이날 제5차 요소수 수급 관련 범부처 합동 대응 회의에서 “차량용 요소수 물량이 5.3개월로 증가할 것”이라며 요소수 대란설에 선을 그었다. 이어 지난달 17일 요소수 공급량이 수요량을 넘기 시작했고, 지난달 22일에는 요소수 하루 생산량이 하루 소비량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후부터 정부는 제2 요소수 대란을 방지하는 중장기 대책 마련도 동시에 추진했다. 이 차관은 지난달 26일 ‘제1차 경제안보 핵심품목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안보 핵심품목’을 지정해 선제적 관리를 하기로 했다. 조기경보시스템도 구축해 가동하기로 했다. 이어 이달 10일 3차 경제안보 핵심품목 TF 회의에서 100여개 품목이 지정됐다.
이 차관은 제2 요소수 대란을 막으려면 품목 지정도 필요하지만, ‘대응 시스템’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리스크가 번지기 전에 상황을 빨리 파악해야 한다’,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해야 한다’, ‘국민·언론과 소통할 때 원보이스(one voice)로 가야 한다’는 3가지 원칙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차관은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람”이라며 “국민에게 영향을 끼치는 리스크가 불거지면 ‘특공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공직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차기정부 출범을 앞두고 부처 해체설 등 다양한 정부조직 개편론이 나오고 있지만, 조직 개편에 앞서 인재를 키우는 방식도 고민해야 ‘제2의 요소수 대란’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