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초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취임 시까진 공수처 설치에 찬성 입장을 밝혀왔다. 그는 2019년 7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패 대응 역량의 국가적인 총합이 커진다면 저는 그런 방향에 충분히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제외한 다른 야당들과 함께 만든 공수처법 최종안이 공개되자 반대입장으로 돌아섰다. 공수처법 24조가 반발의 배경이었다. 이는 같은 해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로 갈등이 쌓인 여권과의 관계가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를 규정한 공수처법 24조는 검찰·경찰에 대한 우월적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1항은 ‘공수처로부터 이첩을 요청받은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 2항은 ‘고위공직자 비리를 인지한 경우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고 각각 규정하고 있다. 공수처에 힘을 싣겠다는 현 여권의 의지가 반영된 조항이다.
◇현 여권, 공수처에 과도한 권한 부여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시절 해당 법조항이 최종안에 들어갔다는 점을 보고받은 후 격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찰청도 당시 “컨트롤타워나 상급기관이 아닌 공수처가 수사 착수단계부터 내용을 통보받거나 마음대로 이첩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독소조항”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기밀성이 생명인 비리 수사에서 공수처가 모든 수사 개시를 통보받고, 마음대로 사건을 가져가는 구조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반발이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경과의 경쟁 구도를 통해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 능력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반대로 검경 수사 역량을 억누르는 방식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당시 많았다”고 전했다.
민주당 등은 이에 대해 “규모가 작은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범죄 혐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또 검경이 나쁜 의도를 갖고 사건을 왜곡·암장하려 할 경우 이를 방지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며 해당 조항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공수처만 성역 없는 수사가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출범 후 공수처가 보여준 모습에 검찰의 우려는 현실화됐다. 출범 직후 윤 당선인(당시 검찰총장)과 김진욱 공수처장이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협력’을 약속했지만 사건을 놓고 검찰과 공수처는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 우월적 권한을 가졌음에도 수사 역량이 떨어지는 공수처는 사건을 두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을 자초했다.
◇尹 “공수처 정상화 위해선 24조 폐지해야”
대표적 사건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수사다. 검찰이 수사하던 해당 사건은 지난해 3월초 ‘검사 사건 강제 이첩’을 규정한 공수처법 25조에 따라 공수처로 이첩됐다. 공수처는 소속 검사 범죄를 발견한 경우 대검에 통보하도록 했고, 검찰은 소속 검사 비위를 발견한 경우 공수처에 사건을 이첩하도록 하고 있다.
사건을 넘겨받은 공수처는 이성윤 서울고검장 황제조사 의혹 등으로 거센 논란을 빚자 이첩 열흘 만에 ‘수사인력 미확보’를 이유로 사건을 다시 검찰로 넘겼다. 그러면서 “수사권한만 이첩할 것”이라며 “기소 여부는 우리가 결정하겠다”며 법에 명시되지 않은 ‘조건부 이첩권’을 주장해 논란을 야기했다.
김 전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허위 보고서를 작성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이규원 검사 사건에서도 정치적 논란이 벌어졌다. 검찰로부터 지난해 3월 사건을 넘겨받은 후 아무런 결론을 내지 않다가 같은해 12월 다시 검찰에 사건을 재이첩한 것이다. 검찰은 사건을 재이첩 받은 직후 이 검사를 기소했다.
윤 당선인 측은 이와 관련해 공약집을 통해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비위를 엄정하게 수사하지 못하고 편향적인 수사로 수사 공정성을 상실했다”며 “공수처가 검경 수사를 무력화하는 일이 없도록 해당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공수처도 지난달 3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 해당 조항과 관련해 “견제장치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법조계에선 결국 공수처 스스로 공수처법 24조에 대한 논란을 확대시켰다고 지적한다. 지방법원 형사부 재판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신생 조직인 공수처를 거대 조직인 검경과 경쟁시키겠다는 차원에선 일부 필요한 조항이라 볼 여지도 있다”면서도 “공수처가 수많은 정치적 논란을 야기하며 스스로 독소조항이란 점을 자인한 꼴이 됐다”고 일침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