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순환출자에 메스 댄 김상조…세마리 토끼 잡기

김상윤 기자I 2017.12.21 18:00:02

''법적 일관성+법집행 신뢰제고+삼성 개혁''
공정위 "삼성SDI, 삼성물산 400만주 매각"
"순환출자 해소 삼성문제 핵심은 아니다"
금융그룹 감독시스템 통한 사후 규제강화

2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합병 관련 신규출자 금지 제도 법집행 가이드라인’ 변경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신규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변경한 것은 경쟁당국의 판단에 대한 일관성을 확보한다는 데 1차적 목적이 있다. 동시에 과거 공정위 잘못을 바로잡고 삼성 개혁 시동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공정위는 과거 잘못된 판단을 다시 잡아 공정위의 법 집행 신뢰를 제고하면서 향후 합병과정에서 불거지는 신규순환출자고리 해소 관련 법적 안정성을 끌어 올리겠다는 판단이다. 동시에 삼성그룹에 대해 칼을 겨누면서 그간 지지부진해던 4대그룹에 대한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21일 “순환출자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공정위가 내용적 완결성은 물론 절차적 정당성도 지키지 못했던 점을 통렬하게 반성하면서 뼈를 깎는 내부혁신을 통해서 공정위가 공정경제의 버팀목이 되겠다”고 밝혔다.

합병전(2015년4월1일 기준)


◇신규 순환출자 가이드라인 어떻게 바뀌나

공정위는 신규순환출자법 취지에 비춰 기존 순환출자고리 내 합병과 달리 기존 고리 외각에 있던 법인을 중심으로 합병이 이뤄질 경우 신규 순환출자고리가 형성된다고 재해석을 했다. 신규 순환출자고리는 법에 따라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합병 전에는 ‘삼성SDI→구(舊)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고리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삼성SDI→신(新)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 고리로 변경된다. 제일모직은 기존 고리에 없던 법인이었지만, 합병 이후에는 구 삼성물산(소멸)이 사라지고 제일모직(존속)을 중심으로 순환구조가 변경된 셈이다.

과거 공정위는 고리 밖 법인을 중심으로 합병이 이뤄지더라도 경제적 실질(주주 지분율 등)은 동일하다는 근거로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 경우 고리가 강화된 부분만 매각하면 되기 때문에 삼성은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2.6%)만 매각했다.

하지만 이번 해석에 따라 ‘고리 강화’가 아닌 ‘신규 형성’이 됐기 때문에, 삼성은 고리 자체를 끊어야 한다. 삼성SDI가 당초 보유했던 삼성물산 지분은 904만주(4.7%)로 이중 500만주는 이미 매각했기 때문에 추가로 404만주(2.11%)를 더 팔아야 하는 셈이다. 이는 당초 ‘삼성 로비’가 작용하기 전 공정위 실무진이 내린 결론과 같은 내용이다. 김 위원장은 “법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500만주냐 900만주냐는 해석의 여기가 있는 부분”이라면서도 “이번 결정은 과거 공정위가 판단기준에 대한 일관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를 되돌리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합병 관련 신규출자 금지 제도 법집행 가이드라인’ 변경 발표에 앞서 지난 2015년 결정에 대해 내용적 완결성은 물론 정당성도 지키지 못했던 점을 통렬히 반성한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정위 신뢰 제고+삼성 개혁 시동

공정위는 이번 결정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처리와 함게 과거 공정위가 잘못 결정내린 두가지 핵심 쟁점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게 됐다. 공정위는 다른 부처와 달리 별도로 ‘적폐 청산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지는 않았다. 별도로 TF를 돌리거나 외부 자문을 받으면서 객관성과 중립성을 바탕으로 과거 잘못을 바로잡고 공정위 신뢰 제고에 나선 셈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 직후에 공정위 과거에 대한 반성과 함께 미래에 대한 각오를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면서 이날 결정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동시에 이번 개편은 삼성그룹에 대한 개혁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 위원장은 그간 두차례 4대그룹을 만나는 과정에서 “변화의 시작을 보여달라”고 압박해왔다. 하지만 별도로 칼(공정위 행정력)을 꺼내들지 않아 일각에서는 개혁의지가 상당부분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신규순환출자 가이드라인 변경은 그간 칼집에 숨겨둔 칼날을 일부 빼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위원장도 최근 기자단 송년간담회에서 “이미 정부의 노력은 시작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순환출자고리 해소는 삼성 개혁의 핵심은 아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관계 개선이 관건이다. 여당 일각에서는 금산분리 규제를 추가로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하고 있지만, 김 위원장의 생각은 금융통합감독시스템 가동을 통한 사후 규제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이데일리 퓨처스포럼 강연에서 “사실상 비(非) 은행권 금산분리 규제가 필요한 유일한 대기업은 삼성 하나뿐이지만, 삼성그룹 스스로가 해법을 고민해서 찾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내년 하반기 도입할 금융그룹 통합감독시스템을 통해 사후적으로 규율하는 행위규범을 만들면 상당 부분 금산분리 문제가 해결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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