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충북 음성군에서 시민들 대상으로 열린 강연에서 “지금은 철 지난 이념논쟁, 흑백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며 “지금의 화두는 미래이고 미래에 대해 얘기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김 전 부총리가 2018년 12월 퇴임 이후 처음으로 고향을 찾아 강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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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없이 100분간 진행된 강연은 ‘나와 세상의 벽을 넘는 유쾌한 반란’ 주제로 가볍게 시작됐지만, 마무리에는 묵직하고 무거운 화두가 던져졌다. 대내외 경제를 비롯해 현실 곳곳이 엄중하기 때문이다. 김 전 부총리는 “강대국들이 자기 이익을 내세우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자유무역·개방의 국제 경제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에서 미래 대비에 대한 얘기는 없다”고 탄식했다.
걱정과 우려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 전 부총리는 “경제가 발전하지 않고 있고, 사회·경제의 역동성은 떨어지고 있다. 청년들이 일할 기회, 사업하고 장사해서 돈 벌 기회, 사랑하고 애 낳을 기회는 없어지고 있다”며 “우리 사회·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정도로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코로나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아 점점 양극화는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김 전 부총리는 2030 청년 세대에 대한 걱정이 컸다. 김 전 부총리는 청계천 판자촌에서 보낸 유년시절, 상고를 졸업한 뒤 주경야독으로 행시에 합격한 20대 시절을 언급하면서 “저보다 지금 청년들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젊은이들이 캄캄한 터널에 갇혀 있다. 출구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출구가 안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김 전 부총리는 이대로 계속 가면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졌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며 “불공정·불평등에 계층 이동의 사다리까지 단절되면 혁명이 일어나 사회가 뒤집어진다. 계층 이동이 단절된 사회에서는 경제위기가 온다”고 밝혔다. 그는 공직에 재직하면서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한 반성을 담은 책을 집필 중이다.
김 전 부총리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좋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기대비 1.6%를 기록했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우리 경제의 빠른 회복”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김 전 부총리는 “성장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민생, 국민의 삶이 중요하다”며 “성장률이 올라도 내 삶에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 오히려 더 화가 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제위기 막으려면 사회 역동성 있어야”
김 전 부총리는 향후 과제로 3가지(혁신·계층이동·소통)를 주문했다. 김 전 부총리는 “경제, 기업, 시장, 정치, 교육, 공기업, 혁신도시 등 우리나라 모든 분야를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다른 나라를 따라 하는) 추격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선도경제로 가려면 바이오, 그린, 플랫폼경제, 한류, K팝 등 사이클이 긴 산업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전 부총리는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은 직접적으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때문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양극화”라며 “경제위기를 막으려면 우리 사회가 계층 이동 등에서 역동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남의 이야기를 안 듣고 고집만 부릴 게 아니라 공감하고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전 부총리는 부총리 퇴임 이후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 이사장을 맡아 예천, 보성, 밀양, 거제 등 전국 곳곳을 다닌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만나보니 우리 국민 개개인의 잠재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의사결정과 사회변화는 소수 정치 엘리트, 관료가 아니라 집단지성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은 코로나19를 고려해 참석 인원을 50명으로 제한했는데도 서울, 강원 등 타지역에서도 참석 신청을 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김 전 부총리가 한국신탁은행(현 하나은행) 다니면서 행시를 준비한 일, 합격 이후 충북도청·음성군청에서 수습사무관으로 근무한 경험,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 미시간대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일, 아주대 총장 재직 시절 자신의 급여 절반을 떼서 어려운 학생들의 해외연수를 지원한 일 등 고군분투한 인생사를 전하자, 객석에서 응원의 박수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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