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서 골목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역사의 장소
고종이 '아관파천'해 지냈던 '구 러시아공사관'
1905년 을사늑약 체결된 덕수궁 '중명전'
중구서 무료 해설 프로그램도 하루 2번 운영
[글·사진=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서울 시청역 앞 대한문에서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정동길로 이어지는 약 840m 구간은 가을로 접어든 요즘, 많은 시민들과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서울의 대표 명소다. 특히 정동길은 서울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산책길 중 하나로 정동교회 앞 사거리에서 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 앞을 지나 새문안길까지 이어진다. 이곳엔 조선시대 이후 우리 역사를 품은 공간으로 길을 따라 한국 최초 개신교 예배당인 정동제일교회와 정동극장, 이화학당, 옛 신아일보 별관 등이 들어서 있다.
| 구(舊)러시아공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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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3시쯤 대한문 앞을 지나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길 방향으로 걸어가니 돌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돌담길을 지나 정동교회 앞 사거리에 이르니 새문안길 방향 양옆으로 이어져 있는 가로수 사이로 정동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동길 주변엔 골목을 따라 들어간 곳에 자리해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의 슬픔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이 있다. 바로 구 러시아공사관과 덕수궁 중명전(이하 중명전)이다. 이 중 구 러시아공사관은 정동길을 따라 걷다가 예원학교 정문과 주한캐나다대사관 사잇길을 따라 90m가량 올라가면 오른쪽에 있는 정동공원에서 만나볼 수 있다.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해 1890년 완공한 구 러시아공사관은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정동공원에서 바라보면 계단 위 언덕에 우뚝 솟아있는 하얀색 벽과 하늘색 문이 인상적이다. 이곳은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왕세자와 함께 1896년부터 1년간 피신했던 ‘아관파천’의 장소로 널리 알려져있다. 본관은 6·25전쟁 때 파괴됐고, 1973년 현재 모습으로 복구돼 3층 규모의 탑만 남아있다.
점심시간에 정동길을 자주 찾는다는 40대 직장인 정모씨는 “구 러시아공사관은 큰길에서 안쪽 골목으로 들어와야 볼 수 있어 처음엔 있는 줄 몰랐다”며 “우연히 알게 된 이후론 정동공원에서 앉아서 쉴 겸 즐겨온다”고 말했다.
구 러시아공사관 인근엔 고종이 공사관에 머물 당시에 덕수궁을 오갈 때 사용한 길로 알려진 ‘고종의 길’도 걸어볼 수 있다. 이 길은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구 러시아공사관까지 120m 정도 이어져 있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개방한다.
| 덕수궁 중명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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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 초입에서 정동극장이 끝나는 오른쪽 골목길 끝에 자리한 중명전도 둘러 볼만하다. 중명전은 대한제국이 1905년 11월 17일, 일본군에 둘러싸여 외교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된 장소다. 내부엔 을사늑약 체결 당시 주요 인물인 이토 히로부미와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학부대신) 등 을사 5적을 포함한 대한제국 8대신이 참석한 회의장 모습이 실물 크기로 재현돼 있다. 또 고종이 을사늑약의 무효성을 알리기 위해 파견한 헤이그 특사 관련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중명전은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한편 중구에선 ‘정동극장→중명전→구러시아공사관(정동공원)→이화여고100주년기념관→정동제일교회→배재학당역사박물관→서울시립미술관’ 등 정동길 일대 1.3㎞ 구간을 주민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는 ‘정동 한바퀴 해설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매주 화·목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하루 두번 운영(1회 최대 10명)하며 예약신청은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홈페이지 ‘정동 한바퀴 도보탐방 프로그램’에서 할 수 있다.
| 을사늑약 체결 당시를 재현한 공간. 왼쪽부터 이근택, 권중현, 이지용, 이완용, 하야시 곤스케, 이토 히로부미, 박제순, 한규설, 민영기, 이하영. (사진=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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