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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만으로 영장 청구·무작위 통신 조회…‘초법적 공수처’ 이래도 되나

하상렬 기자I 2021.12.21 17:24:21

손준성 2차 영장 청구서, 의심·정황만으로 구성
'인권 친화' 표방했지만…피의자 방어권 등한시
통신조회 '언론 사찰' 논란…기자 가족까지 조회
법조계 "해명과 다른 결과…공수처, 의혹에 답할 차례"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검찰 개혁의 아이콘’으로 호기롭게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분별하게 통신 조회를 하는 등 악질적인 검찰 수사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며 존재 의의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공수처가 수사 대상자의 인신을 구속하는 구속영장을 의심·정황만으로 청구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초법적 공수처’ 논란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사진=뉴스1)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 관련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한 2차 구속영장을 청구할 당시 해당 청구서의 구속 필요 사유에 ‘한동훈 검사장과 손준성 검사의 통신 내역 등을 종합해 보면 손 검사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적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구체적으로 영장 청구서에는 MBC의 ‘검·언 유착 의혹’ 보도 이후인 작년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손 검사와 한동훈 검사장이 개인 대화방과 권순정 부산지검 서부지청장(전 대검 대변인)까지 참여한 단체 대화방에서 모두 300여건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들이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는 전혀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특히 손 검사의 혐의를 단정하면서 ‘국민들이 분노하며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거나 ‘손 검사가 언론 등을 동원한 지속적인 수사 방해 행위를 시도하고 있다’는 취지의 주관적인 표현도 섞으며 명확한 증거로 혐의를 입증하기 보다는, 의심·정황만으로 결과를 이미 정해 놓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법조계에선 문자 내용도 아닌 단순히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만으로 혐의를 단정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법률적 판단보다는 이념적 판단에 무게추를 두는 등 피의자의 방어권 보호를 등한시하는 모습을 보이며 헌법이 정하는 국민 기본권 보호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취임 이후 ‘인권 보호’를 거듭 강조하며 “법의 지배와 적법절차의 원칙은 모든 국가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헌법상 대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출범 1주년을 앞둔 현재 공수처의 행보는 김 처장의 발언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이 같은 공수처의 ‘초법적’ 행보는 최근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언론사 ‘사찰 논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공수처는 지난 8월 23일 ‘수사과-260’ 번호가 매겨진 공문을 통신사에 제출해 본지 법조팀 기자에 대한 통신자료를 받아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수처가 제공 받은 자료는 해당 기자의 성명, 주민번호, 주소, 가입일 등이다. 공수처는 이데일리 외에도 통신사, 종합지, 종편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최소 15개 언론사 기자 60여 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수처는 언론 사찰 논란과 관련해 “현재 공수처 수사 대상인 주요 피의자들 중 기자들과 통화가 많거나 많을 수밖에 없는 인사들이 포함돼 이들의 통화 내역을 살핀 것”이라며 사찰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공수처 통신자료 조회 대상자 중에는 지난 4월 공수처의 ‘이성윤 서울고검장 황제 조사’를 보도한 TV조선 기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공수처 해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과 차별화된 인권 친화적인 수사를 하겠다고 공언해 온 공수처가 저인망식 통신자료 조회 등 기존 수사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은 확대돼 시민단체의 고발로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 20일 김 처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기자의 가족까지 통신조회를 하기 위해선 해당 기자를 대상으로 영장을 발부 받아 통신 내역을 확인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렵다”며 “공수처 해명대로 공수처 수사 대상자의 통신 내역을 확인한 뒤 내역에 있는 번호를 대상으로 통신조회를 했다면, 기자 가족의 경우 조회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공수처 해명에 반하는 결과가 나온 만큼, 공수처가 의혹에 답을 할 차례”라며 “계속 함구한다면 본인들의 잘못을 시인하는 꼴이다. 반인권권 수사행태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해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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