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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 장애에 원폭 피해 딛고 3085안타...장훈이 남긴 '불멸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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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무 기자I 2026.09.10 1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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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내내 한국 국적 유지...日야구 규정 바꿔
한국 프로야구 출범에도 힘 보태…86세로 별세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가난과 차별, 오른손 장애와 원폭 피해를 딛고 일본프로야구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운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9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그가 남긴 3085안타는 은퇴한 지 45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프로야구에서 누구도 넘지 못한 대기록이다.

장훈은 1940년 6월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경남 창녕 출신인 아버지 장상정씨와 어머니 박순분씨가 일본으로 건너간 이듬해였다. 가난한 재일동포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잇따라 시련을 겪었다.

1978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시절 장훈. 사진=교도통신/연합뉴스
1978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시절 장훈. 사진=교도통신/연합뉴스
장훈. 사진=연합뉴스
장훈. 사진=연합뉴스
네 살이던 1944년 겨울, 트럭을 피하다 오른손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장애가 남았다. 이듬해 8월 6일에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피해를 겪었다. 자신은 살아남았지만 큰누나가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원폭의 상처는 이후 야구선수로 성공한 뒤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야구는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1952년 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한 장훈은 불편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투수가 됐다. 그러다 1957년 어깨를 다치면서 타자로 방향을 바꿨다. 오른손에 맞춰 배트를 쥐는 방법을 익히고 거듭 방망이를 휘둘렀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지만 야구를 놓지 않았다. 일본 귀화에 대한 압박이 끊이지 않았지만 선수 생활 내내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자신을 차별하고 괴롭히는 일본 학생들과 주먹다짐도 하는 등 방황의 시간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힘든 환경도 장훈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막지는 못했다.

장훈은 1958년 11월 도에이 플라이어스와 계약했다. 일본프로야구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국적을 가진 장훈때문에 규정을 바꾼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에는 팀당 외국인 선수를 2명으로 제한하던 규정이 있었다. 도에이 구단은 그 규정을 피하기 위해 장훈에게 일본 귀화를 권유했다.

하지만 장훈은 “조국을 팔면서까지 야구할 필요가 없다”는 어머니의 반대로 귀화를 거부했다. 일본프로야구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선수는 국적이 외국일지라도 외국인 선수 규정에서 제외한다는 ‘예외 규정’을 신설해 장훈의 프로 진출을 허용했다.

이듬해 4월 프로 무대에 데뷔한 장훈은 첫해 125경기에서 타율 0.275, 13홈런, 57타점을 기록, 퍼시픽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1962년에는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뽑혔고,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에도 힘을 보탰다.

정확한 타격은 그의 가장 큰 무기였다. 리그에서 타율이 가장 높은 선수에게 주는 타격왕을 일곱 차례 차지했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는 4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1970년 타율은 0.383이었다. 꾸준히 안타를 생산하는 모습에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었다. 당시 장훈의 타율 0.383는 랜디 바스가 1986년 0.389를 기록할 때까지 26년간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최고 타율 기록으로 이어졌다.

1975년 말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옮긴 그는 1980년 롯데 오리온스에서 또 다른 역사를 썼다. 그해 5월 28일 일본프로야구 최초로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다. 9월에는 500홈런 고지도 밟았다. 정교함에 장타력까지 갖춘 타자였다.

1981년 은퇴할 때까지 23시즌 동안 2752경기에 출전했다. 통산 성적은 타율 0.319, 3085안타, 504홈런, 1676타점이다. 일본프로야구에서만 3000안타를 친 선수는 지금도 장훈이 유일하다. 통산 안타 2위 노무라 가쓰야의 2901개보다 184개나 많다.

은퇴 후에는 한국 야구의 출발을 도왔다. 1982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를 맡아 프로야구 출범에 조언했다. 한국 정부는 그에게 1980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1990년에는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에서는 TBS 해설위원과 평론가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선데이 모닝’에 출연하며 직설적인 해설로 이름을 알렸다. 오랫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했던 그는 2024년 말 인터뷰에서 몇 년 전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고 밝혔다. 선수로는 일본 야구의 기록을 바꾸고, 은퇴 후에는 한국 야구의 출발에 힘을 보탠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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