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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주지사들과의 연례 회동에서 북미 대화와 관련해 “그들은 대화를 원하고 있으나 우리는 오직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만 대화하기를 원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참가를 계기로 방남한 북측 대표단이 밝힌 미국과의 대화 의사에 대한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적절한 조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북측의 적극적인 대화 의지 표명에도 ‘비핵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특히 트럼프는 이전 정권들을 거론하며 “그들은 25년 동안 대화를 해왔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비판하고 나서며 비핵화 조건이 없는 되풀이는 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적절한 조건은 지난해 12월 틸러슨 국무장관 발언을 고려해도 최소한으로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일시중단)에 대한 의사표현 수준의 조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초 틸러슨 국무장관은 한 토론회에서 ‘전제조건없이 북한과 만남을 갖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해당 발언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파장이 일면서 틸러슨 장관은 사흘만에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위협적인 행동이 지속적으로 중단해야 한다’고 밝히며 앞선 발언을 진압하고 나섰다. 이 같이 조정된 발언의 수위를 고려했을 때 최소한의 대화 조건 수준은 ‘위협적 행동의 중단’으로 풀이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역시 “미국이 말하는 조건은 핵 문제를 의제로 하는 대화에, 상당 기간 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라는 게 기본”이라며 “미국이 원하는 건 (트럼프) 집권 이후로 지금까지 압박을 지속해왔는데 최대강국으로서 대화에 나갈 명분을 보여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영철 부위원장은 이번 방남 기간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적인 ‘비핵화’ 언급과 비핵화 로드맵 제시에도 거듭된 대화 용의만 밝힐 뿐 비핵화 조치에 대한 확정적인 대답은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선참으로 핵야망을 포기해야 할 당사자는 다름 아닌 미국”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 연구위원은 “결국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남 결과 보고에 따른 김정은의 선택에 따라 대화 성사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표명만큼 한편으론 미국이 이에 상응하는 안전 보장 조치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한데 미국 역시 이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아 협상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비핵화 조치를 놓고 북한과 미국은 물과 기름과 같아서 접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며 “그간 수차례 반복돼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