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 높아져 직계가족 상봉 7명뿐…대부분이 3촌 이상
이와 함께 이기순(91) 할아버지는 두 살 때 생이별한 아들 리강선(75)씨와 리씨의 딸인 손녀 리순금(38)씨를 만났다. 1·4 후퇴 당시 갓 태어난 아들을 떼어놓고 형과 함께 월남했다는 그의 눈엔 이슬이 맺혔다. 이 할아버지는 “북녘 아들은 아버지 없이 자란 셈”이라면서 “고생한 세월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연신 눈을 가리며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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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할아버지 할머니 처럼 직계가족을 만난 사람은 89명 중 7명에 불과했다. 형제를 만난 경우도 25명 정도다. 상봉 대상자들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실제로 이날 행사에 나선 분들 중 거동이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신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소통이 어려운 어르신도 있었다. 이에 따라 3촌 이상의 친척 상봉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북측의 형을 찾았는데 형은 이미 사망하고 그 자녀를 찾게 된 것이다.
◇납북자 등 특수이산가족 6명도 상봉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는 국군포로 및 납북자 6명의 가족도 참여했다. 이들은 비록 찾고 싶은 당사자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북측에 있는 혈육을 만났다. 국군포로인 아버지를 찾았던 이달영(82)씨는 아버지는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북측의 이복동생들을 만나게 됐다. 이씨는 “군인이던 아버지는 1952년 국군포로로 북측으로 갔다”며 “아버지는 1987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북측에서 아이도 낳고 좀 생존해 계셨으니 다행이다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복동생들에게 줄 선물로 겨울옷과 영양제 등을 준비했다며 꺼내보였다.
전시납북자를 찾았던 곽호환(84), 이영부(74), 이재일(85), 최기호(83), 홍정순(94) 등 5명은 모두 북측의 조카와 상봉했다. 6·25 전쟁 당시 남편과 큰오빠가 모두 납북된 홍씨는 이번 상봉에서 조카를 만나게 돼 “감개무량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홍씨는 “큰오빠는 오래 전에 죽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남편은 생사 여부도 확인되지 않는다”며 “이번에 조카를 만난다는 연락을 받고는 놀라서 눈물만 났다”고 했다. 최씨도 북측의 조카라도 만나게 돼 다행스럽단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최씨는 “전쟁 당시 맏형이 의용군으로 끌려가면서 납북됐는데 자세히 어떤 상황에서 끌려갔는지는 모른다”면서 “그래도 (형이) 장수해 딸도 2명이나 낳았다니 반갑다. 어머님이 맏형을 특히 그리워하시면서 끼니 때마다 꼭 형이 먹을 밥도 함께 상에 올렸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부는 이번 상봉행사에 앞서 북측에 납북자와 국군포로 50명을 별도로 선정해 생사 확인을 요청했다. 북측은 우리 측의 요청에 총 21명의 생사를 확인했고 29명에 대해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왔다. 21명 중 생존자는 8명이고 13명은 사망자로 확인됐다. 생존자 가운데 상봉이 가능한 인원은 6명으로 북측은 상봉 불가 통보 이유에 대해 ‘운신 불가’라고 답했다. 이들 2명은 모두 전후 납북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