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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에서 40대 오토바이 배달원 A씨가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신호대기 중이던 화물차 앞으로 A씨가 끼어들었고, 높은 운전석으로 배달기사를 발견하지 못한 화물차 운전자가 그대로 출발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31일엔 금천구 독산동에서도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운전하던 60대 기사 B씨가 뒤에서 오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치여 사망했다.
선릉역 사고 현장에 숨진 A씨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됐고 시민들이 헌화를 하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민주노총은 잇단 사망사고에 “배송 중에 일어난 오토바이 사고는 반드시 산재 처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상당수 시민들은 배달기사들의 사망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신호위반, 인도주행, 횡단보도 주행, 차량 사이 공간으로 이리저리 끼어들어 운전하는 이른바 칼치기 등이 횡행하면서 위험에 직면한 적이 많다고 지적한다.
평소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신모(55)씨는 배달기사 사망사고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운전을 할 때마다 오토바이를 보면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고 고백했다. 신씨는 “특히 저녁 시간에 오토바이를 보면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다.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배달기사를 보면 무서워서 더 조심해서 운전하게 된다”며 “다들 먹고 살자고 일하는 거긴 하지만 솔직히 놀랄 때가 많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선릉역 A씨 추모공간에서도 시민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8월 29일 현장에서는 “여기가 사고 나서 돌아가신 곳이구나”라며 묵념을 하고 지나가는 시민이 있는 반면 “신호위반 하니까 사망한 거지”라며 혀를 차는 이들도 있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사흘간 임시분향소에 있었는데 이렇게 반응이 갈릴 수 있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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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배달 수요가 폭증하면서 수많은 배달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 배달원(우편집배원, 택배원, 음식 배달원 등) 취업자 수는 39만명으로 2019년 하반기 대비 11.8% 증가했다. 2013년 조사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이륜차 교통사고 건수는 3만4046건으로 전년대비 18.5% 증가, 역대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사망자와 부상자도 각각 439명, 4만830명으로 전년 대비 3.9%, 17.6% 증가하는 등 최고치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배달기사들의 험한 운전습관이 문제지만 이들이 무리하게 운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을 주목한다. 배달기사들의 수입산정 방식은 건수마다 금액을 측정하는 만큼 한정된 시간 내에 무리하게 많은 배달 건수를 처리하려는 유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배달기사들의 도로교통 안전 준수의식을 고취하는 것은 물론 플랫폼 업체·소상공인·정부 등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수 배달노조 배민라이더지회장은 “배달기사들이 교통 법규를 어기는 습관은 확실하게 잘못된 부분이 맞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비정규직이라도 상관없으니 시급제·월급제를 도입해 기본적으로 생활이 보증되는 수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안으로는 비가 오거나 점심시간 등 피크시간에 주문건수를 2000~3000건으로 제한하는 방법도 있다”면서도 “사실 이런 대안들은 현실적으로 소상공인과 플랫폼업체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만큼 점차 대화를 통해 이견을 조정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