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CEO 승계 불투명·촉박 진행...지배구조 모범관행 '시험대'

김나경 기자I 2024.11.25 18:16:12

적용 첫 해부터 지배구조 모범관행 미준수 우려
쇼트리스트 확정 안 돼 올해도 ‘촉박 검증’
금감원, 이사회 간담회 통해 사후 점검 예정
“모범관행 안 지키면 경영실태평가 패널티”
“주주의 이사회 견제 필요” 의견도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김나경 기자] 올 연말 금융지주·은행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최고경영자(CEO) 승계가 여전히 불투명하고 촉박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용 첫해부터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무색해지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이사회 간담회 등으로 승계 프로그램 적정성을 점검할 예정인 가운데 업계의 모범관행 정착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금융지주·은행 CEO 승계과정에서는 연임 여부뿐 아니라 승계프로그램이 얼마나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준수했는지 금융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은행권과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마련한 모범 관행을 적용한 ‘1호 사례’이기 때문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사회 정례 간담회 등을 통해 승계절차가 모범관행에 맞게 진행했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CEO 선임절차는 비공개가 원칙이기 때문에 미리 정해둔 절차와 기준에 맞게 실제로 이행을 했는지, 또한 기록으로 남겨서 투명하게 관리했는지 추후 점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달 28일 이복현 금감원장과 8대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에서도 지배구조 모범관행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모범관행 최종안은 추후 지배구조에 관한 금감원 감독·검사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할 예정”이라며 “정기검사 경영실태평가 항목에 모범관행 세부 내용을 반영하는 등 지배구조 평가비중을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범관행 중 CEO 선임·경영승계절차 관련 핵심원칙은 총 10개다. 우선 △CEO 후보군 관리·육성부터 최종 선정까지 종합적 승계계획 마련 △CEO 자격요건에 대한 구체적 정의 제시 △임기만료 최소 3개월 전 승계절차 개시와 절차단계별 최소 소요시간 부여 △외부전문가 활용 등 세부평가방안 마련 등이다.

문제는 모범관행이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벌써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올 연말 행장 임기 만료를 앞둔 일부 은행에서는 한 달이 남겨두고 쇼트리스트(압축 후보군)를 선정하지 못했다. 다른 금융지주사는 다음 달 최종후보자 1인을 추천하는 기존 방식과 같이 경영승계절차를 진행 중이다.

CEO 임기 만료까지 한 달을 앞두고 쇼트리스트가 확정이 안 되면 다면적인 평가가 이뤄지기 힘들다. 외부후보일 경우에는 더욱 이사회 등의 검증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모범관행은 CEO 자격요건을 미리 마련해 상시후보군을 관리하고, 연 1회 이상 관리실태를 점검토록 했다

특히 올해에는 지난해와 달리 지주 회장·행장 후보군이 베일에 가려져 있어 승계절차 개시시점, 진행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몇몇 금융사는 모범 관행을 철저히 지키려고 하지만 일부 금융사는 예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며 “사후에 구체적으로 밝혀지겠지만 이미 모범관행과 배치되는 모습도 보인다”고 말했다.

단계별로 면밀히 후보군을 검증토록 한 원칙은 올해 자리잡지 못한 모범관행으로 꼽힌다. 대다수 은행이 임기만료 최소 3개월 전인 지난 9월 CEO 승계절차를 가동했지만, 절차단계별 최소 소요시간을 지켰는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다. 지난 5월 금감원의 모범 관행 이행 점검 결과에서 다수 은행이 “단계별 최소 소요시간 부여를 고려 중”이라고 했던 것과 배치되는 것이다.

선임 과정의 투명성·공정성을 위해 다양한 평가방식을 두는 것 또한 정착하지 못한 관행 중 하나다. 최근 8개 은행지주는 쇼트리스트 확정 후 최종후보 결정까지 평균 11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대면면접은 일회성에 그쳤다. 경영승계 1~2년 전 유력후보를 선별해 역량을 개발토록 하고 성과·다면평가와 이사회 면접 등을 거치는 글로벌 기업과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각 금융사 경영실태평가에 모범관행 이행상황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금감원의 경영실태평가 항목에 모범규준 이행내용을 넣어서 금융사가 이행하지 못했다면 패널티를 줘야 한다”며 “각 사가 자율적으로 하지 않았을 때는 확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강제할 수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스튜어드십코드를 통해 주주와 기관투자자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CEO 후보군을 검증하는 이사회가 제역할을 하도록 주주 견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모범관행이 제대로 준수되면 내부통제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며 “특정 지분 이상을 보유한 기관투자자가 사외이사 후보 추천과 심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이사 임기를 3년 단임으로 변경하는 등 상당수 이사가 수차례 연임할 수 없도록 할 장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에서는 올해 금융사 역량에 따라 모범관행 준수 정도 또한 차별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쇼트리스트, 롱리스트를 공개했던 지난해 상황이 이례적이다. 올해 각 사가 어느 때보다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세부적인 사항은 연차보고서 등이 나왔을 때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