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산업이 노동력 빨아들여"…러 기업들, 인력부족 심화

방성훈 기자I 2023.11.09 16:33:17

무기제조 등 군수산업 종사자는 징집 대상서 제외
방위산업체로 근로자 대거 이탈…민간기업은 구인난
고령화·징수 대상 감소 불구 국방비는 급증
해외 도피도 최대 수백만…"러 경제 전반 불안정해져"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러시아 기업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수많은 남성들이 전장으로 끌려가거나 징집을 피해 국외로 도주한 데 이어, 무기 제조 공장에서 남아 있는 노동자를 빨아들이고 있어서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가운데)이 지난달 7일(현지시간)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사르마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생산하는 군수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AFP)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민간기업들이 노동력 부족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러시아 경제 전반이 불안정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러시아의 실업률은 30년 만에 최저 수준인 3%에 그친다.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으로 기업들이 극심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다.

러시아에서 노동력 부족이 처음 문제가 됐던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군사동원령’을 발동한 직후였다. 당시 약 30만명의 병력이 징집됐고, 전장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국외 망명길에 오른 러시아 국민이 최소 수십만명에서 최대 수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들어서는 군수업체들이 무기 생산 등을 위해 노동자를 대거 고용하면서 인력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 유럽 정책분석센터의 파벨 루진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러시아 군사 부문의 구매관리자지수가 전쟁 이전보다 30~40% 급증했다.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는 의미다.

아울러 러시아 매체 코메르산트신문은 지난달 니즈니노브고로드주에서 실업자 수가 27% 급감했으며, 제조업 일자리에서 1만 7000개의 공석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이 가운데 7500명이 방위산업체 등으로 직장을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FT는 “방위산업체에 취업하면 징집을 피할 수 있어 러시아 남성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직장”이라며 “IT 등 고숙련 노동자들 대다수가 해외로 도피한 것도 첨단 부문에서 큰 타격을 입혔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디지털 개발부 장관은 지난 8월 IT 인력이 50만~70만명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민간 기업들은 인력 부족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러시아의 한 대형 광산회사 대표는 “노동시장이 극도로 빡빡하다. 이건 단지 병력 동원이나 러시아를 탈출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무기 생산”이라고 꼬집었다.

근로시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인력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컨설팅업체 핀엑스페르티자는 “(무기공장은) 3교대로 운영되고 있는데, 근로시간이 10년 만에 가장 길어졌다. 이는 옛 소련 시절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군수산업 부문에서도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약 60만명이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며, 40만명이 더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한정된 인력자원을 놓고 민간기업들과 국영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막심 레세트니코프 러시아 경제개발부 장관은 지난 9월 “노동력 부족은 러시아 경제 내부적으로 가장 큰 위험요소”라고 말했다.

한편 인구가 고령화하는 가운데 노동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어서 러시아의 경제 위기를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방비가 급증한 것이 최대 위험 요소 중 하나로 꼽혔다. 지난달 러시아 정부는 내년 국방비로 국내총생산(GDP)의 약 6%에 달하는 10조 8000억루피를 지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침공 전인 2021년에 할당된 금액의 3배 규모로, 올해보다는 약 70% 늘어난 금액이다.

세금 징수 대상이 급감한 가운데, 실제 지출되는 국방비는 당초 계획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스페인 폼페우파브라대학교(UPF)의 루벤 에니콜로포프 교수는 “러시아는 재정자원을 국방 부문으로 돌리고 있으며 국민들은 이를 따르고 있다”며 “노동시장 및 경제 전반이 한계에 부딪혀 최대 생산 능력에 큰 압박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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