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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옹녀는 '에로영화' 주인공? 평범한 민초입니다

장병호 기자I 2024.09.11 17:40:40

10주년 맞은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18금' 내세워 흥행 성공한 '웰메이드 창극'
'색골남·색정녀' 지우고 평범함으로 공감대
'세대교체' 나선 김우정-유태평양 '케미' 눈길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그라제 인생은 벌거숭이제. 우리 같은 민초들은 돈 밝히고 감투 밝힐 것이 아니라 자고로 색을 밝혀서 오락하고 사는 것이 장땡이여.”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중 옹녀 역 이소연, 변강쇠 역 최호성의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장)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지난 5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한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보면서 귀에 박힌 대사다. 극 중 변강쇠가 옹녀와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살기로 하면서 하는 말이다. 2017년 처음 공연을 볼 때는 잘 만든 성인용 코미디를 보는 기분으로 마냥 웃었다. 이번엔 웃음 속에 평범한 민초의 애환이 느껴져 짠했다.

변강쇠와 옹녀. 이름만 들어도 낯 뜨겁다. 1986년 배우 이대근, 원미경 주연으로 개봉한 영화 ‘변강쇠’의 영향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성인용 영화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도 제목만 들으며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실제로 작품은 ‘18금 창극’을 표방하고 있다. 남녀의 성기를 묘사하는 ‘기물가’(己物歌) 장면이 특히 그렇다.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번 공연에서도 웃음의 강도는 여전한다. ‘웰메이드 창극은 이런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단지 웃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은 옹녀도 변강쇠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10년 동안 한결 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중 옹녀 역 김우정, 변강쇠 역 유태평양의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장)
작품의 초점 또한 ‘색골남’, ‘색정녀’로 각인된 변강쇠, 옹녀의 이미지를 지워내는 데 있다. 줄거리는 원작 ‘변강쇠타령’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만나는 남자마다 죽는 바람에 마을에서 쫓겨난 옹녀, 그리고 숱한 여자를 만나면서도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변강쇠가 청석골에서 만나 함께 인연을 이어가다, 변강쇠가 나무 대신 장승을 뽑아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두 사람의 질펀한 ‘성관계’ 묘사는 많지 않다. 때로는 보여주지 않는 것이 더 자극적인 것처럼 은유적인 대사와 노랫말, 그리고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활용한 영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리며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오히려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옹녀와 변강쇠의 인간적인 면모다. 이들에게 성(性)은 행복하게 살고 싶은 순수한 욕망이다. 옹녀와 변강쇠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사랑으로 채우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다. 2막에서 옹녀가 보여주는 결단은 그래서 더욱 힘을 얻는다. 변강쇠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운명과 맞서는 모습은 평범한 사람이기에 더욱 응원하게 된다.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중 옹녀 역 이소연의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장)
이번 공연의 가장 큰 볼거리는 주연 배우들의 ‘세대교체’다. 10년간 흥행을 견인해온 이소연-최호성, 그리고 앞으로 새로운 10년을 이끌 김우정-유태평양이 옹녀와 변강쇠 역으로 더블 캐스팅됐다. 이소연-최호성이 ‘믿고 보는’ 옹녀-변강쇠라면, 김우정-유태평양은 신혼부부를 보는 듯한 풋풋한 모습으로 색다른 재미를 전한다. 김우정, 유태평양은 지난 6일 첫 공연부터 선배들 못지않은 ‘케미’를 보여주며 앞으로의 10년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일월성신이시여. 나와 우리 변서방을 미워하지 말으시고, 후세 또한 품었으니 부디 색골남녀라 싸게 몰아치지 말고 천생연분으로 경계를 넘어 사랑하였구나 하고 저 후세까지 전하여주오.” 옹녀의 당찬 선언이 전하는 희망과 용기는 지금도 유효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공연은 오는 15일까지 이어진다.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중 옹녀 역 김우정의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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