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인가 공정거래법인가…공정위가 `재계 저승사자` 된 이유

공지유 기자I 2022.05.09 19:17:51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답을 찾다] 공정경쟁정책 ①
OECD 16개국 형벌규정 없는데…시지남용까지 형벌
ACP 인정 않는 나라도 한국뿐…경제활동 위축 우려
"글로벌 스탠더드 맞게 ACP 도입·형벌 최소화해야"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공지유 기자] 2020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네이버(035420)가 부동산 정보업체와 계약하며 자신들에게 제공한 부동산 정보를 다른 회사에 제공하지 못하도록 강제한 행위를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시지남용) 및 불공정거래에 해당한다고 판단, 과징금 10억원과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그러나 공정위 사건에 대한 의무고발요청권을 가진 중소기업벤처부는 지난해 11월 형사처벌까지 필요하다며 권한을 행사, 네이버는 결국 검찰 고발되고 말았다.

반면 터키 경쟁당국(TCA)은 2020년 11월 구글 광고서비스가 시장지배력을 무기로 광고시장을 어지럽혔다며 1억9670만리라(한화 167억330만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터키는 구글 `애드센스`가 순수한 검색결과 위쪽에 텍스트 광고를 배치해 검색결과를 어지럽히는 등 경쟁보호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터키는 시지남용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이 없어 과징금 이상의 조치는 없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말 10위권까지 올라서고 세계 8위의 무역대국 타이틀을 얻었지만, 국내 공정거래법은 법이 만들어진 40년 전인 1980년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공정거래 규제에 대한 형사벌칙 규정을 살펴보면 국내 형벌조항이 얼마나 글로벌 스탠더드와 차이가 있는 지 분명히 드러난다. 2018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공정거래법(경쟁법)에 형벌 규정이 아예 없는 나라는 16개국이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도 담합만 형벌조항이 있을 뿐 시지남용에는 없다. 미국은 담합과 시지남용 모두에 있기는 하나 시지남용은 사실상 기소대상이 아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담합, 시지남용,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이 모두 있다. 2020년 12월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 전에는 기업결합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까지 있었다. 지나치게 많은 형사 처벌 조항 때문에 기업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법 취지와 달리 오히려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쟁법 집행 과정에서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 특권(ACP)`부재 역시 문제다. OECD 국가 중 비닉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이 때문에 공정위가 현장조사에서 사건과 관련이 없는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CP) 부서를 먼저 터는 등 그동안 불문율로 지켜 왔던 ACP를 무시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학계와 법조계, 업계에서는 고발인과 피심인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로 통용되고 있는 ACP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경쟁포럼 회장인 신현윤 연세대 명예교수는 “시대적 변화에 맞게 공정거래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한국 경쟁당국이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ACP제도 도입과 형벌규정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