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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반 서울예대에서 한강의 소설창작론 수업을 들은 김 씨는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중증 시각장애인으로, 문학이 좋아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러나 책을 점자나 컴퓨터의 음성인식기능을 이용해 읽어야 하는 등 학업이 쉽지 않았다고. 하지만 한강 교수의 배려로 학교 생활을 뜻깊게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 씨에 따르면 하루는 한강 교수의 교수실로 갔더니 수업과 학교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세심하게 물어보며 자연스럽게 당시 작가의 최신작인 소설 ‘희랍어 시간’(2011년) 얘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해당 작품에는 김 씨처럼 시각을 잃는 이가 등장한다.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2011)에는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인 희랍어(그리스어) 강사와 말을 잃어버린 여자 수강생이 등장한다. 책은 이들의 교감과 상실, 고통, 희망의 순간들을 섬세한 문장으로 담았다.
김 씨는 현재까지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2019년 사고로 중상을 입고 수술을 받은 직후 한강이 직접 병문안을 왔다고.
김 씨는 “제가 앞을 보지 못하는데, 거리를 걷다가 난간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곳에서 발을 헛디뎌 4m 아래로 추락하면서 크게 다쳤다. 큰 수술을 두 차례 했는데 교수님이 병원까지 찾아오셔서 걱정해 주셨고, 나중에는 아버지께 금일봉까지 주고 가신 걸 알게 됐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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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서울예대 교수직을 내려놓은 뒤에도 두 사람의 연은 이어졌다. 김 씨는 “교수님은 장애인 극단이나 연출가분들도 꽤 아시는데 제게 ‘이런 데 일해보지 않겠느냐’며 일자리를 주선하시기도 했다”며 “작년 겨울에도 교수님이 초청해 주셔서 장애인들이 만든 공연을 서울 시내에서 함께 보고 식사도 같이했다”고 전했다.
현재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김 씨는 “글을 계속 써보라”는 한강의 말을 늘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물음에는 “‘받을 분이 받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작품도 작품이지만 한강 교수님 그 자체가 노벨상을 받을 만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늘 흔들리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좋은 분”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그는 노벨문학상이 발표되고 나서 고민하다 사흘 뒤 한강 작가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김 씨는 “교수님은 글로 세상을 바꾸신 것 같아요. 제게는 교수님이 제 인생과 저희 가족을 살려주신 귀인이십니다. 병원에 누워서 하반신 마비 판정받았을 때 정말 살 희망이 없었는데 교수님께서 와주셨을 때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다시 힘을 내서 지금의 제가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고요. 교수님은 그 상(노벨문학상)을 넘어 한 사람과 한 가정을 살려주신 귀하신 분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받은 한강은 “고마워 ○○(김씨의 이름)!”라며 짧은 글로 제자에 대한 마음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