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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11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골드만삭스 테크 콘퍼런스에서 “모두가 가장 먼저이고, 최고가 되고 싶어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가장 먼저 가장 좋은 AI칩을 달라고 한다는 얘기다.
◇말 한마디에, 떨어지던 증시도 돌려놔
이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젠슨 황의 발언은 장 초반 1%대 하락세였던 뉴욕증시마저 돌려세웠다. 이날 아침, 미국의 8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월대비 0.3% 상승해 전망치(0.2%)를 웃돌았다는 소식에 투자심리는 크게 악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황 CEO 발언 이후 기술주에 강력한 매수세가 유입, 나스닥(2.17%)·S&P500(1.07%)·다우(0.31%)등 뉴욕증시 3대 지수를 모두 끌어올렸다. 이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급 파급력이다. 뉴욕증시가 올해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엔비디아가 원동력이었다.
황 CEO는 “고객들이 우리 제품의 공급에 대해 이전보다 더 감정적인데, 그럴만하다”며 TSMC 외에 다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핵심 AI 칩 생산을 맡길 수 있다고도 밝혔다. TSMC의 생산능력 한계 등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 상황을 에둘러 과시한 것이다.
미 정부가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 수출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당연히 호재였다. 특히 2조 5000억달러대로 쪼그라들었던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2조 8640억달러까지 불어 3조달러 재진입에 바짝 다가섰다.
◇흔들리지 않는 ‘뚝심’…위기땐 과감한 승부수
이날 투자자들이 환호한 것은 황 CEO가 보여준 AI를 향한 강한 자신감과 뚝심이다. 외부 혹평에도 흔들리지 않고 AI칩 개발을 위해 묵묵히 걸어온 ‘뚝심’과 도전을 향한 ‘열정’이 엔비디아를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만 출신인 황 CEO는 9세 때부터 미국에서 이민자로 겪은 고된 삶이 강인한 인내심과 정신력, 겸손함을 키웠다고 말한다. 그는 과거 한 언론 인터뷰에서 “첫 직장은 데니스(미국 레스토랑 체인)의 접시닦이였지만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일하면서 최고의 접시닦이가 됐다. 이후 버스보이(식탁 치우는 직원)로 승진했다. 나는 효율적이면서도 근면성실하게 일했고 다시 최고의 버스보이, 또 웨이터가 됐다. 항상 그렇게 일했고 마침내 (엔비디아의) CEO가 됐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에 취직한 LSI 로직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최고의 성과를 내 윌프레드 코리건 CEO의 눈에 들었다. 코리건 CEO는 벤처투자업계 ‘큰 손’인 돈 발렌타인 세콰이어캐피털 창립자와 황 CEO의 미팅을 주선했는데, 이때 그는 “좋은 인터뷰도 나쁜 인터뷰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그러니 좋은 과거를 만들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발렌타인에게 잘보이려는 말보다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성과로 증명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 발언은 발렌타인의 마음을 움직였고 세콰이어의 엔비디아 투자로 이어진다.
엔비디아는 1996년 설립 후 3년이 지나도록 자리를 잡지 못해 파산 위기에 내몰린 적도 있다. 직원들에게 줄 급여가 한 달치 남았을 때 황 CEO는 TSMC에 편지를 썼다. 작은 스타트업에 불과하지만 엔비디아의 반도체를 만들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의 진심은 모리스 창 TSMC CEO에게 닿았다. 창 CEO는 황 CEO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파트너를 제안했다. 두 기업이 처음으로 손을 맞잡았던 순간이다.
◇워커홀릭? 헌신?…“주 7일 깨어 있을 땐 일만 생각”
좋게 말하면 ‘헌신’, 나쁘게 말하면 ‘워커홀릭’ 성향도 성공 배경으로 꼽힌다. 황 CEO는 지난 5월 스트라이프의 패트릭 콜리슨 CEO와 인터뷰에서 “나는 일주일에 7일을 일한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일한다. 일하지 않고 있을 때에도 일에 대해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과 가치관은 현재 엔비디아의 기업문화가 됐다. 그는 “해고하는 것보다는 (성과를 내도록) 괴롭히는 게 낫다. 그들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데이터 분석회사인 콰트르는 “황 CEO는 엔비디아 설립 초기를 돌이키며 스스로도 성공 가능성이 거의 0%였다고 했다. 당시의 절박함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그는 칩 설계·제조에도 직접 관여한다. 회사가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실험적인 제품과 기술에 올인한 덕분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