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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구는 최근 한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앱) 게시판에 한 작성자가 프로필을 받기를 원하는 이성의 조건에 대해 작성한 글 중 성격 유형 검사인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 이하 MBTI)’에 관한 부분으로, 특정 MBTI에 대한 선호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학생복 업체 형지엘리트가 지난 29일 공개한 초·중·고·대학생 373명을 대상으로 한 친구 관계 관련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4%는 “친구를 사귈 때 선호하는 MBTI가 있다”고 답했다. 특히 자신의 성격 유형을 감정형(F)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경우, 감정형을 선호하는 비율은 49%에 달했지만 사고형(T) 친구를 선호한다는 답변은 7%에 그쳤다.
MBTI는 미국 작가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녀의 딸 이자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스위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1944년에 개발한 자기 보고형 성격 유형 검사로, 사람의 성격을 16가지의 유형으로 나눠 설명한다.
MBTI는 인간의 성격을 각각 2종류로 구성된 4가지 지표에 대한 개인의 선호를 바탕으로 총 16가지로 나눈다. 에너지의 방향에 따라 외향(E)과 내향(I),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 감각(S)과 직관(N), 판단의 근거에 따라 사고(T)와 감정(F), 주된 삶의 양식에 따라 판단(J)과 인식(P)으로 구분하고 이를 조합해 총 16가지의 성격 유형으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효율적인 이해를 통해 상호 간의 협력 관계 설정이나 갈등 해결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과몰입은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 설문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 MBTI에 대한 맹신은 자칫 편견과 선입견을 낳아 인간관계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례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30대 직장인 A씨는 MBTI가 ENFJ인 사람이다. ‘외향’·‘직관’·‘감성’·‘계획’이 그를 구성하는 대분류의 키워드다. 그는 언제부턴가 사람을 본격적으로 사귀기 전에 상대의 MBTI부터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상대의 MBTI가 ‘_ST_’라면 마음속에서 확실한 선을 긋는다. 반대로 ‘_NF_’인 사람에겐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 또 자신과 친한 사람들의 MBTI를 물어보니 백이면 백 모두 ‘NF’이고, 어렵고 불편한 사람들은 거의 ‘ST’이다보니 A씨는 ‘MBTI는 과학’이라는 생각을 굳히고 그것을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로 삼고 있다.
인터넷상에 많이 퍼진 16가지 유형 간 MBTI 궁합 표를 봐도 ENFJ처럼 ‘_NF_’인 사람들은 ‘_ST_’인 사람들과는 ‘최악의 관계’다. 형지엘리트의 설문 조사에서 감정형(F) 응답자 중 사고형(T)을 선호한다는 답변이 7%에 그친 것과 같은 맥락이다.
MBTI의 유형별 특징에 따르면, N은 이상적이고 공상이 많은 성격이다.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성격으로 외부의 세계를 직관적으로 파악한다. F는 인간관계 중심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로 감성적이고 공감력이 좋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감정이 타인들에 의해 많이 휘둘리는 타입이다. 반면 S는 현실적이다. 숲보다는 나무를 보는 성격으로 외부의 세계를 경험적으로 파악한다. 오감에 의해 인식되지 않는 것들은 쉽게 믿지 않는다. T는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사람들로, 자신의 감정이 외부에 의해 그다지 흔들리지 않는 타입이다.
‘NF’ 유형들은 ‘ST’ 유형들에 대해 ‘기가 세고 상처를 잘 주며 공감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반면 ST 유형들은 NF 유형들에 대해 ‘엉뚱하고 답답하며 걸핏하면 상처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두 부류는 서로 일종의 물과 기름 같은 관계인 셈이다.
◇접근성 좋은 MBTI 대유행…“MBTI 장점 살린 과학적 평가 도구 개발 필요”
문제는 MBTI가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대유행하면서 단순히 재미나 참고용 수준이 아닌 과몰입 상태가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연장선상에서 최근엔 MBTI가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채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입사 자격 요건에 특정 MBTI를 명시하는 회사도 속속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사회 전반의 각종 마케팅 영역에서도 MBTI 활용은 대세가 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MBTI의 여러 장점에 따른 긍정적 측면은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집착은 지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인간관계의 시작 단계에서는 좋은 참고 지표가 될 수 있지만, 이를 맹신해 활용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는 “MBTI는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사람을 이해하는 도구로써 인간관계 시작에서 효율적인 측면이 있는 데다, 상호 간 공감대를 만들어 말문을 트기 쉽게 하는 장점이 있다”며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도구로써, 혹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 측면에서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교수는 “MBTI 채점 방식은 본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경우 시간적 안정성을 갖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우 검사할 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또 기존의 성격 유형 검사인 빅(Big) 5 성격 검사와 동시에 해 보면 긍정적 성격 특성은 상관관계가 잘 나타나는 반면 MBTI 성격 유형별 부정적 특징의 경우 빅5 검사의 하위 척도인 ‘신경증(Neuroticism)’과 상관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즉 MBTI가 부정적 특성은 예민하게 포착하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흥미를 넘어 사람을 진단한다거나 채용하는 데에서 지나치게 많이 MBTI 결과에 의존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차원에서 MBTI에 ‘과학성’을 더한 더 나은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MBTI는 놀이 정도로, 인간관계의 시작 단계에서 참고하기엔 좋은 수준의 평가 도구”라며 “반면 비과학적인 평가 도구인 MBTI에 대해 과신하거나 맹신하면 타인에 대해 단정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폐해가 생길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현재까지는, 접근성이 좋고 단순해 이해하기 편한 MBTI의 대체 수단이 없다”며 “MBTI처럼 쓰기 쉽고 청소년들이 좋아할 법하면서도 과학적이기까지 한 도구들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도 반성해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