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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의 SK센터 화재…민간 데이터 센터 안전점검 사각지대

김국배 기자I 2022.10.20 19:44:47

SK데이터센터 배터리 이중화 없었다
소화가스로 버티면서 서버 복구시간 벌었어야
인근소방서 아닌 119에 13분 만에 신고
빌려주면 점검 대상, 나만 쓰면 제외…‘점검 공백’
경영진 관심 커져야…과기정통부, 긴급 점검 회의도

[이데일리 김현아 김국배 김아라 기자] 지난 15일 발생한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불은 지하 3층 전기실에만 머물렀는데, 전원 공급은 5일째에야 완료되면서 카카오 서비스 장기간 먹통 사태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이중화를 안 한 카카오 책임과 별개로 SK센터 역시 화재 대응에 미흡했고, 비상대응 매뉴얼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SK 판교센터는 배터리와 무정전전원장치(UPS)가 각각 한 개씩만 있었는데도 배터리가 불타고 있다는 이유로 성급하게 물을 뿌리고 전원을 내렸다. 소방서 도착 1시간 14분만, 자체 시스템 감지 이후 1시간 32분만이다. 소화가스(할로겐 K-23)가 분출된 시간은 겨우 1시간 30여분이다.

SK 측은 배터리 화재만 제압하면 곧바로 전원을 켤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착오였다. 당일 저녁 11시 45분 화재는 진압됐지만, 물로 인한 감전 위험 때문에 전원 공급에 실패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배터리와 UPS를 이중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물을 뿌린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데이터센터 전문가는 “배터리와 UPS가 한개만 있는 상황이라면 소화가스를 더 사는 한이 있어도 버텨야 한다. 그래야 서버의 생명인 전기가 죽지 않는다”고 했다. 전원 차단을 최대한 늦췄다면, 카카오가 서버를 복구하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는 의미다. 화재 위험 때문에 LG유플러스 서초센터는 배터리를 건물 외부에 두고, 네이버 춘천 센터 ‘각’은 배터리가 필요없는 ‘다이나믹 UPS’를 쓴다. 박원기 네이버클라우드 대표는 “각에는 배터리 없이 전기를 공급하는 다이나믹 UPS를 썼다. 전원에 장애가 있을 때 발전기가 자동으로 킥오프되는 방식으로 구축했다. 돈은 많이 든다”고 했다.

배터리와 UPS가 이중화돼 있지 않음에도 서둘러 물을 뿌려 전원 공급이 늦어진 데 대해 SK측도 아쉬워했다. SK C&C 관계자는 “데이터센터 사업자는 고객사 서버 정보를 알 수 없다. 카카오 서버의 이중화 정도를 알았다면 물을 뿌리는 시기를 달리했을 수 있다”고 했다.

SK센터는 비상 상황 매뉴얼에 따른 대응도 미숙했다. 이데일리가 국회를 통해 입수한 ‘판교캠퍼스 A 비상 상황 대응 매뉴얼’에는 인근 소방서 전화번호나 인명 사고에 대비한 비상연락망이 없고, 가스로 배터리 진화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매뉴얼도 없었다. SK는 오후 3시 20분 내부 시스템 감지 이후 13분이 지난 3시 33분에서야 직원이 119로 화재 신고를 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라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매뉴얼이 없어 현장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강중협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KDCC) 회장은 “물을 뿌린 것은 사전에 인근 소방서와 교류가 없었다는 얘기”라며 “인근 소방서와 사전 협의해 1년에 한 번 정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빌려주면 점검 대상, 나만 쓰면 제외…‘점검 공백’


이처럼 역대 최악의 데이터센터 화재사건이 나면서 국내 민간 데이터센터의 ‘안전 점검’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KDCC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국내 전체 데이터센터 156개 중 공공 부문을 제외한 민간 데이터센터 수는 88개로 집계됐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같은 집적정보통신시설은 매년 보호조치 이행 점검을 받아야 한다. 사업자와 입주사가 다르면서 규모가 500㎡ 이상인 곳이 대상이다. 쉽게 말해 SK C&C처럼 카카오 등 다른 기업들에게 상면을 빌려주면 규제 대상이지만, 자체 데이터센터를 자사 서비스 용도로만 쓴다면 제외된다. 자체 데이터센터가 없는 카카오 같은 부가통신사업자도 대상이 아니다. 네이버의 경우 ‘각 춘천’을 자사뿐 아니라 계열사 등에 빌려주기 때문에 점검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점검 공백’이 불가피하다. 작년에 보호조치 이행 점검을 받은 곳은 민간 데이터센터 88개 중 80곳이었다. 10%는 점검을 받지 않았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법이 시대를 못 따라가는 것”이라며 “자사만 쓰는 데이터센터라도 제공하는 서비스가 (카카오처럼) 국민 생활과 밀접한 경우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업계에선 “정보통신망법의 집적정보통신시설 사업자를 정의하는 법 조항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보통신방법 46조 1항은 집적정보통신시설 사업자를 ‘타인의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을 위해 집적된 정보통신시설을 운영·관리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라고 돼 있다.

결과적으로 ‘타인’이라는 문구의 해석에 따라 적용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 타인의 범위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 사태 이후에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부가통신사업자를 재난관리기본계획에 포함시키는 등의 입법도 이뤄지고 있다. 2년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히를 넘지 못해 폐기됐던 법안(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경영진 관심 커져야…과기정통부, 긴급 점검 회의도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2014년 6월 24일 사용승인이 났다, 지하4층~지상6층의 건물이다. 화재가 난 지하3층에는 배터리실, 발전기실, 변전실이 있다. (사진=임호선 의원실)
데이터센터 산업이 성숙하기 위해선 경영진의 관심이 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중협 회장은 “해마다 안전 점검을 나가지만 강도가 세지 않고, 비용이 들고 피곤한 일이라 잘 안하려 하는 면도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안전 점검이 조금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과기정통부는 박윤규 2차관 주재로 ‘국내 데이터센터 사업자 긴급 점검회의’를 열어 주요 데이터센터의 화재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한 보호조치를 긴급 점검하고 안정성 확보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는 KT클라우드를 비롯해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LG CNS, 삼성SDS, 롯데정보통신 등이 참석했다.

박윤규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데이터센터는 디지털 시대에 핵심적인 인프라로서 위기 상황에도 끊임없는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세밀한 점검이 필요하다”며 “이런 사례(카카오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협력해 보호지침을 개선하는 등 데이터센터 안정성을 강화하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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