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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자 자청’ 시진핑, 국제사회 존재감 부각…서방은 우려

김윤지 기자I 2023.03.21 20:00:54

習 "우크라 외교적 해결" 푸틴 "열려있어"
"美패권 아닌 다자주의"…내정 다진 習, 적극 외교
백악관 “中, 휴전 제안 보다 푸틴 철군 압박해야”

[베이징=이데일리 김윤지 특파원] 최근 국가주석 3연임까지 확정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국제 사회로 눈을 돌려 외교 행보를 넓혀 가고 있다. 그가 중동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그동안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 질서에 중국이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등 서방은 중국의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AFP)
◇ 習 “갈등 첨예할수록 대화 포기 말아야”

21일(이하 현지시간)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전일부터 러시아 국빈 방문 일정에 돌입한 시 주석은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4시간30분 동안 진행된 비공개 오찬에서 양국 관계와 공통 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문제의 어려움이 클수록 평화적 해결이 중요하고, 갈등이 첨예할수록 대화를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면서 “중국은 우크라이나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촉진하기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중국의 객관적이며 균형 잡힌 입장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평화 회담에 열려 있으며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환영한다”고 답했다. 그는 중국이 지난달 발표한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정치적 해결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신중히 검토한다고도 말했다. 중국은 해당 입장문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다.

다음날 오후 이어진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주요 의제 중 하나로 중요하게 다뤄질 예정이다.

중국 측은 이번 시 주석의 방러를 “우정, 협력, 평화의 여정”이라고 표현하는 등 국제 사회의 중재자로서 중국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 주석이 러시아 방문을 마친 이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화상 회담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 주석의 종전 협상 중재 여부는 국제 사회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 안살림 마친 中, 美겨냥 “패권 반대”

그동안 중국은 3기 집권 체제 구축, 코로나19 관련 방역 등 내정에 집중해야 했다. 지난 13일 폐막한 중국 연례 최대 행사인 양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시진핑 3기 집권 체제가 공식 출범하면서 중국은 외교에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에는 각국의 주권과 영토 존중, 내정 불간섭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시 주석의 국제안보 구상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의 상세 개념를 발표했으며, 이달 초에는 중동의 ‘오랜 앙숙’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베이징으로 초청해 중국의 중재로 관계 정상화 합의를 이끌어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AFP)
동시에 중국은 연일 미국을 향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평화 회담을 제안하는 중국과 달리 “미국은 분쟁의 불씨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의 주장이다. 시 주석은 전일 방러 직전 러시아 국영매체 기고문을 통해 “강대국의 패권 횡포가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미국을 비판했다. 같은 날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사회 분열 등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며 미국을 겨냥한 비난 보고서를 공개했다. 민주주의는 공통된 가치이나 국가마다 각국에 적합한 정치 제도나 모델이 있다면서, 다자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 “中 중재자 자처, 평화 아닌 비난 회피 구실”

이 같은 중국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서방의 시각은 회의적이다. 예컨대 백악관은 중국의 휴전 요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 불법 점령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 조정관은 20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 영토에 남겨두는 중국의 휴전 요구를 우려한다”면서 “중국의 도움을 받아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회복을 배제한 채 전쟁을 멈추려는 러시아의 전술적 조치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이 제시한 휴전은 러시아 군대의 재정비를 위한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커비 조정관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를 존중하도록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을 직접 압박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표면적으로 중립을 외치나, 러시아와 밀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중국 외교부는 ICC 전심재판부의 푸틴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와 관련해 “ICC는 정치화와 이중 잣대를 피해야한다”며 반대의 뜻을 내비치는 등 실제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피하고 있다. 중국의 대러 무기 지원 추진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외교적 위상 제고 노력에 대해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에 대한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알렉산더 가부에프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 선임연구원은 “국제 사회의 중재자가 되고자 하는 중국의 의도는 평화를 위한 로드맵이라기 보다 서방의 제재로 중국에 점점 더 의존하는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한 비판을 피하는 방법”이라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평화회담은 시 주석이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구실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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