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입법 강행을 막을 수단이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검찰 수사 공백 및 경찰 권한 비대화에 따른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 마련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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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당선인이 언급한 검경 협조체계의 구체적인 구상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참고할만한 사례는 있다. 지난해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검경은 검경 수사준칙 시행령을 근거로 사건 수사협의체를 구성했다.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권이 없는 검찰이 수사를 주도하는 경찰과 협의한 첫 사례다.
해당 시행령 제7조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 내란·외환·선거·테러·대형참사·연쇄살인 관련 사건 등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거나 국가적·사회적 피해가 큰 중요한 사건의 경우에는 송치 전에 수사할 사항, 증거수집의 대상, 법령의 적용 등에 관하여 상호 의견을 제시·교환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 검수완박 법안으로 검찰의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제거되지만, 시행령을 근거로 경찰의 수사에 참여할 여지는 열려있다. 또 시행령 제9조는 ‘수사기관 간 협조가 필요한 사항에 대해 서로 의견을 협의·조정하기 위해 수사기관 협의회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 검경은 LH직원 투기 의혹 수사협의체를 구성하고 수사 진행 상황과 주요 쟁점 등 관련 정보를 공유했다. 각급 대응 기관별 핫라인을 구축하고, 사건 수사팀과 관할 지청 등 각급 별 전담 협의체를 구성해 수시로 공조 회의를 열기도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같은 검경 협조 사례를 검수완박 시행 이후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규모가 크고 중대한 사건에 개별적으로 수사협의체를 구성하면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더라도 수사 공백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일반적인 사건들에 대해서는 사건별로 담당 검사를 지정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지금은 경찰이 사건을 종결하고 송치를 해야 검찰에 사건이 접수되는 방식이지만, 경찰이 사건을 입건하는 동시에 검찰 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도 사건이 공유되고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담당 검사에게 수시로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한 해 동안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었던 이유 중 하나는 경찰이 수사를 자문해줄 상대 검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은 탓”이라며 “사무 배당이 이뤄진 검사가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지 않더라도 경찰이 언제든지 자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이어 “검찰과 국가수사본부가 사건 협력 공조를 위한 일종의 지침을 만들고, 검경 관할 단위로 협의체를 설치하는 방법도 있다”며 “협력 시스템 마련은 시행령과 훈령 정도로도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검찰 출신 임무영 변호사는 검사를 경찰서에 수사지도관 자격으로 파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전국에 257개의 경찰서와 18개의 경찰청이 있는데 치안 수요에 맞춰 검사 1~2명을 파견하면 300여 명으로도 충분하고, 이들은 사건에 대해 수사 방향과 법리를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임 변호사는 “이 자문은 수사에 대한 관여·지휘가 될 것이고, 기존 수사지휘보다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며 “경찰이 수사 도중에 겪는 법률적 어려움을 해소하면서 인권침해 소지도 막을 수 있고, 권한이 확대된 경찰의 폭주를 방지하는 견제 역할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