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만난 발레리나 손유희(40)는 은퇴를 앞둔 무용수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가올 은퇴 무대를 떠올리다 아주 잠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발레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발레는 곧 제 인생이죠.”
◇2003년 유니버설발레단 객원 단원으로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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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무용수는 30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은퇴 시기를 고민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신체적으로 힘든 고난도의 기교를 소화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다. 손유희도 몇 년 전부터 막연하게나마 은퇴에 대한 생각을 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선화예중에서 발레 강사를 뽑는다는 채용 공고를 접한 뒤 무작정 지원을 했다. 다행히 합격해 올해부터 발레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평소 고민도 많고 우유부단한 편인데, 인생에서 큰 결정을 할 때는 마음이 끌리는 대로 과감하게 선택을 하네요(웃음). 춤에 미련이 남으면 어떻게 하지 싶었는데, 막상 은퇴를 결정하니 큰 미련이 없었어요. 남편이 오히려 더 당황했죠.”
손유희의 남편 이현준(39)도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다. 발레단에서 만난 두 사람은 2013년 결혼했다. 손유희는 “‘너희는 화장실 갈 때만 떨어져 있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연애할 때부터 남편과 늘 함께였는데, 이제는 생활 패턴이 달라지는만큼 서로 적응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남편 이현준과 ‘미리내길’로 애절한 2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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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희는 네 살 때 어머니를 따라 에어로빅 학원에 갔다 춤에 빠졌다. “어릴 때 사람들 앞에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대요. 그런데 음악이 나오고 춤추는 분위기가 되면 갑자기 돌변해서 춤을 췄다고 하더라고요.” 초등학교 3학년, 홍역에 걸려 열이 펄펄 나는데도 어머니를 졸라 발레 학원에 갈 정도로 발레에 대해 열정적이었다. 그 열정으로 13세 때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2013년엔 더 다양한 발레 작품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남편과 함께 미국 털사발레단에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손유희는 출산 이후 성공적으로 무대에 복귀하며 다른 발레리나들의 본보기가 됐다. 2018년 남녀 쌍둥이를 낳았다. 당시 신체적인 변화가 커서 의사로부터 “발레를 다시 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출산 이후 꾸준한 관리를 통해 발레리나로 당당히 돌아왔다. 출산의 경험은 발레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는데도 영향을 미쳤다. 손유희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 자신에게만 집중했는데, 아이가 생긴 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발레 지도자로서 롤모델은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늘 연습실에서 단원들과 함께 하는 문 단장처럼 앞으로 발레 유망주에게 도움을 줄 생각이다. “무용수는 늘 불안을 안고 살아요. 때로는 체형의 불리함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여 마음의 고통을 겪기도 하죠. 발레에선 내면의 아름다움도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야 한다는 걸 아이들과 함께 나눌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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