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 연출 뮤지컬 '시스터즈'
조선 첫 걸그룹 저고리 시스터즈
'원조 한류' 이끈 김시스터즈 등
한국 여성그룹 초창기 재조명
여성 배우 10명, 멀티 배역 소화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영국 밴드 비틀즈가 미국에서도 유명세를 탄 계기는 1964년 인기 TV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 출연이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비틀즈(총 4회 출연)를 넘어서 ‘에드 설리번 쇼’에 무려 22회나 출연한 한국 걸그룹이 있다. 1953년 데뷔해 미국을 주 무대로 활동한 ‘대한민국 최초의 걸그룹’ 김시스터즈다.
| 뮤지컬 ‘시스터즈’의 한 장면. 왼쪽부터 배우 홍서영, 신의정, 이서영, 유연, 이예은, 하유진. (사진=신시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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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스터즈를 비롯해 193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시대를 풍미한 여성 그룹들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시스터즈’(SheStars!)다. 뮤지컬 대표 연출가 겸 음악감독 박칼린이 작가 전수양과 함께 한국 가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여성 그룹의 이야기를 한 편의 쇼 뮤지컬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지난 19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만난 박칼린 연출은 “처음 시작은 윤복희, 인순이 선생님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자료 공부를 하면서 두 분이 ‘시스터즈’로 불린 당대 인기 여성 그룹에 속했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오늘날 K팝이 세계 무대를 휘어잡고 있는데, 이들에 앞서 한국 대중음악계에 이런 멋진 여걸들이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작품은 ‘목포의 눈물’로 잘 알려진 가수 이난영이 리더를 맡았던 ‘조선 최초의 걸그룹’ 저고리 시스터즈를 시작으로 1950년대 미국에 진출해 ‘원조 한류’를 이끈 김시스터즈, 60년대 슈퍼 걸그룹 이시스터즈,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인 윤복희가 속해 있었던 코리안 키튼즈, 그리고 70년대 인기 듀오 바니걸스와 가수 인순이를 배출한 희자매 등을 조명한다. 이들의 대표곡 무대를 당시의 느낌 그대로 재현해 볼거리를 선사한다.
| 뮤지컬 ‘시스터즈’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박칼린이 19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신시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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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연출은 고인이 된 이난영을 제외한 나머지 가수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해 이들의 실화를 극으로 재구성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유신 시대 등을 거치며 가난과 차별 등을 겪으면서도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진다. 그동안 한국 대중음악사(史)를 다룬 영화, 드라마 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스터즈’는 여성 가수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세 가지를 신경 썼어요. 음악적인 업적, 당시의 사회적인 이슈, 그리고 각자의 개인 스토리요. 사실 이분들이 겪은 힘든 이야기도 많아요. 그런 부분이 작품에도 조금씩 담겨 있지만 굳이 부각하고 싶진 않았어요. 이분들이 걸어온 길을 ‘셀러브레이션’(축하)하고 싶었습니다.”
출연 배우는 여성 배우 10명(유연·신의정·김려원·선민·하유진·이예은·정유지·정연·이서영·홍서영)과 쇼의 사회자 역할을 하는 남성 배우 1명(황성현) 총 11명이다. 10명의 여성 배우 중 7명이 매회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특정 배역을 맡지 않는다. 한 배우가 주역과 단역을 동시에 소화하는, 한마디로 모두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김시스터즈 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악기 밴조, 마림바 등도 직접 연주한다. 박 연출은 “‘시스터즈’라는 제목처럼 배우들의 자매애(시스터우드)를 통해 그룹으로 하나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시스터즈’ 공연에서 작품 속 등장인물의 실제 모델인 바니걸스의 고재숙(왼쪽에서 두 번째), 이시스터즈의 김명자(현재 이름 김희선, 왼쪽에서 세 번째), 코리안 키튼즈의 윤복희(오른쪽)가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전한 뒤 출연 배우들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신시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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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공연에선 작품의 실제 주인공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무대인사를 가졌다. 이시스터즈의 김명자(현재 이름 김희선), 윤복희, 바니걸스의 고재숙 등은 “너무 감동적이고 즐겁고 멋있는 순간이었다.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벅찬 소감을 남겼다. 박 연출은 “선생님들이 공연을 보시고 ‘이건 아니야’라며 심기가 불편해하시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들 즐겁다고 해주셨다”며 “함께 출연한 배우들까지 감동하며 눈물 흘린 건 정말 뜻밖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공연이 끝나면 박 연출이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찾은 370여 팀의 이름이 영상으로 올라간다. 박 연출은 “K팝 이전에 한국에 이런 히로인(여성영웅)이 있었다는 것, 라이브에 실력 있는 뮤지컬배우들이 있다는 것, 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가도 재미있는 공연이라는 것으로 ‘시스터즈’가 기억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공연은 오는 11월 12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