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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은 앞섰는데 동맹에 졌다"…9.5조 호주 호위함 수주전, K-방산 '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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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잉크 기자I 2026.04.21 11:04:51
호주 SEA 3000 프로젝트…일본 미쓰비시에 최종 낙점

호주 정부는 노후화된 안작(Anzac)급 호위함을 대체하기 위해 추진한 ‘SEA 3000’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최종 낙점했다. 약 100억 호주달러 규모의 이 사업은 범용 호위함 11척을 도입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한국은 HD현대중공업의 충남급과 한화오션의 대구급 호위함을 내세워 유력 후보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끝내 뒤집지 못했다. 이번 패배는 단순한 수주 탈락이 아닌, ‘K-방산 가성비 공식’의 한계를드러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동화 90명 운용이 판도 뒤집어…호주 해군의 현실적 선택

낙찰된 미쓰비시중공업의 개량형 모가미급 호위함은 첨단 자동화 기술을 대거 적용해 기존 호위함의 절반 수준인 약 90명의 승조원만으로 운용이 가능하다. 저출산으로 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호주 해군에게 이 특성은 결정적인 매력 요소로 작용했다. 항속 거리도 핵심 변수였다. 모가미급의 항속 거리는 8000해리(약 1만 4800㎞)인 반면, 한국의 충남급·대구급은 4500해리(약 8300㎞)에 불과했다. 호주 해군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부응해 중국을 태평양에서 견제하기 위해 장거리 초계가 가능한 호위함을 원했고, 거주 편의성 측면에서도 만재 배수량 5500t에 승조원 100명인 모가미급이 4300t에 120명인 충남급보다 유리했다.

‘동맹의 밀도’가 진짜 심판…쿼드 안보 체제가 배경

전문가들은 이번 수주전의 진짜 승패 요인으로 ‘동맹의 밀도’를 꼽는다. 미국·일본·호주는 중국의 해양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쿼드(Quad)를 중심으로 강력한 3국 안보 협력 체제를 구축해왔다. 유사시 무기 체계의 호환성과 군사 정보망의 완벽한 연동이 핵심인 이 구도에서, 호주가 전략적 밀착도가 낮은 한국보다 일본의 손을 들어준 것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호주·일본 국방장관은 호주 다윈에서 만나 지속적인 군사 협력을 논의했으며, 3국은 연합훈련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계약 구조 역시 호주의 전략적 이해를 반영해, 선도함 3척은 일본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나머지 8척은 호주 현지에서 기술 이전을 통해 건조하는 방위 산업 내재화 방식을 채택했다.

일본 방산 정책 대전환…전후 최대 무기 수출 기록

일본의 방산 정책 전환도 이번 결과를 뒷받침한다. 일본은 2014년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제정해 무기 수출의 족쇄를 풀기 시작했고, 잠수함·레이더 등 부분 장비 수출을 타진하던 단계를 넘어 이번에 70억 달러짜리 완성형 대형 군함 수출을 성사시켰다. 전후 평화헌법 체제 아래 무기 수출을 금기시해온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방산 시장의 거인으로 단숨에 부상한 순간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성과를 발판으로 무기 수출을 진두지휘할 범정부 사령탑 신설에 착수했으며, 기존의 ‘비전투용 분야’ 5개 유형 제한을 사실상 폐지하고 전투기·미사일·호위함 등 살상 능력을 갖춘 완제품 무기 수출 길을 열었다.

K-방산의 교훈…가격·납기를 넘어 ‘안보 파트너’로의 진화

방산업계는 이번 탈락이 K-방산의 성장 방정식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사건이라고 진단한다.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개별 무기를 파는 전통적 세일즈 방식만으로는, 최상위 안보 동맹을 무기로 내세우는 강대국들과의 경쟁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으로 나뉘어 ‘코리아 원팀’을 구성하지 못한 반면, 일본은 미쓰비시중공업이 주도하고 미쓰이 E&S가 지원하는 원팀 체제로 뛰었다는 점도 뼈아픈 반성점으로 지적된다. 업계 관계자는 “함정 사업 같은 조 단위 사업은 국가 대 국가의 절충 교역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함정이면 함정, 탱크면 탱크만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 국가 전략적으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방산이 나아갈 방향은 단순한 무기 공급자를 넘어 구매국과 지정학적 이익을 공유하는 안보 파트너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번 호주 사업의 패배는 K-방산이 가격과 납기라는 무기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시대에 진입했음을 냉혹하게 증명했다.

마켓잉크 김건우 기자 woowoong@market-i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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