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현지시간) FDA는 성인 급성 편두통 환자 대상 화이자의 ‘자브즈프레트’(성분명 자베게판트)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자브즈프레트는 게판트 계열 약물 중 최초로 승인된 비강분무형 제제이며, 임상 3상에서 15분 내로 효과가 나타나는 속효성이 관찰됐다. 이와 함께 해당 약물을 복용한 10명 중 4명에서 2시간 내로 대부분의 통증을 사라졌으며, 최대 48시간가량 효과가 지속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회사는 자브즈프레트를 오는 7월 미국에서 출시할 예정이다.
게판트 계열의 약물은 편두통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신호전달물질인 ‘칼시오닌유전자관련펩타이드’(CGRP) 수용체가 활성화하지 못하게 막는 기전을 지녔다. 기존 급성 편두통 치료제로 널리 쓰여 온 아스피린이나 아세트아미노펜 등과 같은 트립탄 계열의 물질과는 전혀 다른 생체 기전을 가진 셈이다. 트립탄 계열의 약물은 뇌속 행복호르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 수용체에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화이자가 내놓은 ‘너택ODT’(성분명 리메게판트, 유럽제품명 바이두라)와 미국 ‘애브비’의 ‘큐립타’(성분명 아메게판트) 및 ‘유브렐리’(성분명 유브로게판트) 등 기존의 게판트 계열의 약물은 모두 경구용으로 개발됐다. 코의 뿌리는 방식으로 투약편의성을 크게 높인 자브즈프레트를 확보한 화이자의 시장 영향력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편두통 치료제 유통업계 관계자는 “트립탄 계열 약물은 이미 수많은 회사가 뛰어들어 수익을 내기가 어려운 시장이 됐다. 내성 등 부작용 문제로 두통이나 편두통 예방에 쓰지못해 적응증 면에서 한계도 뚜렷하다”며 “반면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 너택ODT에 이어 자브즈프레트까지 확보한 화이자가 편두통 시장을 주름잡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약물들의 출시 가능 국가를 얼마나 빠르게 늘리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9년 최초의 경구용 급성 편두통 치료제로 승인된 유브렐리는 예방 적응증을 확장하지 못하면서, 후발 주자인 너택ODT에게 크게 밀리고 있다. 너택ODT는 미국에서 지난 2020년 2월과 2021년 5월에 각각 급성 편두통 치료와 예방 적응증을 획득했다. 애브비가 후속 약물로 내놓은 큐립타는 2021년 9~10월 사이 편두통 예방과 치료 적응증을 차례로 승인받은 바 있다.
현재 너택ODT의 경우 지난해 유럽, 이스라엘 등 일부 중동국가에서 편두통 예방 및 치료 적응증을 모두 획득했다. 이에 더해 2021년 5월부터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출시하기 위한 가교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2024년경 아시아 국가에서 너택ODT를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판트 계열의 물질은 적응증과 투약 편의성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하면서 매출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화이자에 따르면 2022년 2분기 너텍ODT의 매출은 1억9400만 달러였다. 특히 2020년 3월 미국 시장 내 첫 출시 후 너택ODT의 매출은 매 분기마다 30~50%씩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지난해 해당 약물로 총 8억 2500만~9억 달러(한화 약 1조원) 사이의 매출을 올릴 수 있으리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애브비의 큐립타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미국 시장에서만 출시된 큐립타는 지난해 분기별로 6000만~1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작인 유브렐리 역시 분기별로 1억8000~9000만 달러 수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앞선 관계자는 “단 3종으로 구성된 게판트 계열 경구약 시장이 지난해 18~20억 달러 수준에 이르고 있는 셈이다”며 “최신 시장 분석 자료가 아직 없지만, 게판트 계열 약물로 인해 편두통 시장의 전체 규모가 동반 성장한 것인지 아니면 트립탄 계열 약물의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을 야기했는지 더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2020년을 기점으로 기존에 없던 편두통 예방 적응증을 갖춘 약물들의 등장으로 편두통 시장이 전반적으로 확대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게판트 계열 약물들이 관련 시장을 잠식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인포메이션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편두통: 세계 의약품 예측 및 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편두통 관련 의약품 시장은 2020년 47억 달러에서 매년 9.9%씩 성장해 2030년경 1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
한편 미국(4종)과 한국(1종) 등에서 편두통 예방 적응증을 획득한 피하주사(SC)형 항체치료제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미국 일라이릴리의 ‘엠갈리티’(성분명 갈카네주맙)와 암젠의 ‘에이모빅’(성분명 에레누맙) 등이 CGRP 수용체를 타깃하는 대표적인 항체치료제다. 이들 중 유일하게 국내에서도 지난해 9월 허가된 엠갈리티의 최근 분기별 세계 매출은 1억6000만~7500만 달러 수준으로 동종 약물 중 1위이지만, 너택ODT나 유브렐리 등 게판트 계열 약물엔 다소 뒤쳐지고 있다.
이처럼 편두통 시장 흐름이 게판트 계열 물질로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관련 신약 개발을 시도하지 않고 있다. 약 300억원 규모의 편두통 시장을 두고 트립탄 계열의 복제약(제네릭)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대신 비교적 최근에는 일동제약(249420)이 세로토닌 수용체를 타깃하는 디탄 계열의 신약 ‘레이보우’(성분명 라스미디탄)를 지난달 말 국내에서 출시했다. 미국 일라이릴리의 레이보우는 심혈관 부작용이 잦는 트립탄 계열 약물의 대체제로 주목받았던 물질이다. 일동제약 측은 “현재 레이보우는 비급여이지만 관련 논의를 이어가, 더많은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