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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적인 삶"…가라앉는 외딴섬에서 이명호 렌즈가 건져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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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26.11.03 1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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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명호, 사비나미술관·갤러리현대 동시 개인전
나무 뒤 캔버스 세운 오랜 작업서 나아가
수몰 위기 적도의 섬 키리바시 찾아 나서
맹그로브나무에 그물막 드리운 연작으로
덕수궁 선원전 터 회화나무 작품 보태고
사진 속 형체 긁어내는 역설의 작업까지
사진-회화의 경계로 재현-재연 만들어온
20여년 이은 '사진-행위 프로젝트' 일단락

작가 이명호가 서울 은평구 진관로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에 건 자신의 작품들 ‘키리바시 #1-1-1’(2026, 360×360㎝·왼쪽)과 ‘키리바시 #1-1-2’(2026, 360×360㎝) 앞에 섰다. 사람 무릎 깊이의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맹그로브나무의 앞과 뒤에서 야자섬유를 엮어 만든 그물막을 드리우고 촬영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이명호가 서울 은평구 진관로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에 건 자신의 작품들 ‘키리바시 #1-1-1’(2026, 360×360㎝·왼쪽)과 ‘키리바시 #1-1-2’(2026, 360×360㎝) 앞에 섰다. 사람 무릎 깊이의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맹그로브나무의 앞과 뒤에서 야자섬유를 엮어 만든 그물막을 드리우고 촬영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태평양 한복판 적도에 올라탄 작은 섬 ‘키리바시’. 날짜선이 지나는 이곳에는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공존한다. 하루를 떠나보내며 또 하루를 맞을 수 있는 거다. 18∼20세기 서구 열강이 돌아가며 집적댔지만, 원체 ‘먼 곳’이었던 터라 문명의 큰 훼방 없이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섬이 어처구니없는 ‘위기’에 빠졌다. 섬이 점점 가라앉는 거다. 바닷물이 자꾸 들어차 평균해발고도 1.5m를 잠식하는 중이다. 이대로라면 2050년쯤 주민의 거주가 불가능한 최초의 ‘수몰국가’가 될 거란다.

“2021년 우연히 그 뉴스를 접했다.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사라질 나라라니.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인데 곧 가장 먼저 해가 지는 나라가 된다는 얘기가 아닌가. 당장 찾아가야겠다 싶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 이명호 개인전 ‘(노)싱’ 전경. 액자를 두른 ‘키리바시 #1-1-1’(2026, 153.5×153.5㎝)과 ‘키리바시 #1-1-2’(2026, 153.5×153.5㎝)가 나란히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 이명호 개인전 ‘(노)싱’ 전경. 액자를 두른 ‘키리바시 #1-1-1’(2026, 153.5×153.5㎝)과 ‘키리바시 #1-1-2’(2026, 153.5×153.5㎝)가 나란히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 ‘당장’에 4년이 걸렸다. 스튜디오 스태프 12명이 두 달여 체류해야 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꾸리려니 말이다. 채비·장비·정비, 다 갖춰 비행기를 탄 게 지난해 1월이다. 4차례 경유해 이륙 60시간 만에 키리바시, 그 섬에 당도했다.

“어제와 오늘에 아무 미련 없이 행복하기만 한 사람들이 살더라. 여전히 수렵·채취로 생활하면서. 농경으로 넘어가지 못한, 구석기시대의 삶이 박제된 듯하다고 할까. 말 그대로 ‘사진적인 삶’이었다. 사진이란 게 결국 시공간을 박제하는 게 아닌가.”

이명호의 ‘키리바시 #2-1’(2026, 128×160㎝). 바다 위 돌 섬 위 삐죽한 나무 한 그루 앞에 하얀 캔버스를 설치했다.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 전경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의 ‘키리바시 #2-1’(2026, 128×160㎝). 바다 위 돌 섬 위 삐죽한 나무 한 그루 앞에 하얀 캔버스를 설치했다.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 전경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의 ‘키리바시 #2-1’(2026, 153.5×185.5㎝). 하얀 캔버스를 설치한 작품 양쪽에 수평선을 맞댄 두 점이 풍경을 잇고 있다. 갤러리현대 개인전 ‘(노)싱’ 전경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의 ‘키리바시 #2-1’(2026, 153.5×185.5㎝). 하얀 캔버스를 설치한 작품 양쪽에 수평선을 맞댄 두 점이 풍경을 잇고 있다. 갤러리현대 개인전 ‘(노)싱’ 전경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사진작가 이명호(51). 어쩌면 그의 20여 년 작가인생에서 가장 거대했고 긴박했을 프로젝트였다. 물리적인 거리나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오랜 철학이자 설계인 ‘부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한다’를 이렇게 ‘가라앉는 키리바시’란 역설로 입증해낼 줄 몰랐으니까. 게다가 말이다. 이로써 20여 년 전 ‘사전계획’한 그의 오랜 ‘설계’(사회-행위 프로젝트)가 일단락 마무리되는 지점에 이르렀으니까.

사실상 그 완결편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꾸리고 마치 최종 보고하듯 결과물을 꺼내놓은 건데. 서울 은평구 진관로 사비나미술관의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의 ‘(노)싱’((no)thing)이다. 테마와 작품 등에서 두 전시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그 완결에 이르는 과정 전체를 미술관이 살폈다면, 갤러리는 그 완결을 구성한 두 연작 ‘헤리티지’(2024)와 ‘키리바시’(2026)에 집중했다. 신작인 ‘키리바시’ 연작의 압도하는 규모는 미술관에, 액자에 들일 만큼 함축한 작업들은 갤러리에 걸었다.

이명호의 ‘작업전경: 키리바시 #1-1-1-2’(2026, 38×198㎝). 나무의 배경막으로든 자연의 가림막으로든 늘 세웠던 하얀 캔버스가 없는 전경이다. 장노출 촬영으로 파도를 쌓아 마치 회화작품인 듯하다. 갤러리현대 개인전 ‘(노)싱’ 전경(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의 ‘작업전경: 키리바시 #1-1-1-2’(2026, 38×198㎝). 나무의 배경막으로든 자연의 가림막으로든 늘 세웠던 하얀 캔버스가 없는 전경이다. 장노출 촬영으로 파도를 쌓아 마치 회화작품인 듯하다. 갤러리현대 개인전 ‘(노)싱’ 전경(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의 ‘작업전경: 키리바시 #1-1-1-2’(2026, 186.6×1132㎝). 폭 188㎝ 캔버스 6점을 연결했다.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 전경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의 ‘작업전경: 키리바시 #1-1-1-2’(2026, 186.6×1132㎝). 폭 188㎝ 캔버스 6점을 연결했다.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 전경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4년 준비, 60시간 비행 끝 발 디딘 ‘키리바시’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알린 건 ‘나무 작업’을 통해서다. 홀로 우뚝 선 나무를 찾아내 하얀 배경막을 캔버스처럼 뒤에 세우고 촬영한 작업이다. 자태를 생생하게 드러낸 사진이면서 치밀하게 옮겨낸 회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두 장르의 ‘애매한 경계’에 머무는 일이었다. 바로 ‘재현’과 ‘재연’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또 그렇게 작가의 의도적인 행위를 사진에 개입하는 ‘사진-행위 프로젝트’의 출발이었다.

이명호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 전경. ‘헤리티지(유산) #7-5-1’(2024, 130×160㎝·왼쪽)과 ‘헤리티지(유산) #7-4-1’(2024, 130×160㎝)이 비스듬히 마주 보고 있다. 서울 정동 덕수궁 선원전 터를 홀로 지키던 회화나무를 카메라에 담아낸 작업이다. 뒤편에 하얀 캔버스를 세우고 지켜본 사계절 중 여름과 겨울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 전경. ‘헤리티지(유산) #7-5-1’(2024, 130×160㎝·왼쪽)과 ‘헤리티지(유산) #7-4-1’(2024, 130×160㎝)이 비스듬히 마주 보고 있다. 서울 정동 덕수궁 선원전 터를 홀로 지키던 회화나무를 카메라에 담아낸 작업이다. 뒤편에 하얀 캔버스를 세우고 지켜본 사계절 중 여름과 겨울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 갤러리현대 개인전 ‘(노)싱’ 전경. ‘헤리티지(유산) #7-2-2’(2026, 153.5×192㎝·왼쪽)와 ‘헤리티지(유산) #7-2-1’(2024, 130×160㎝)이 비스듬히 마주 보고 있다. 서울 정동 덕수궁 선원전 터를 홀로 지키던 회화나무 뒤에 하얀 캔버스를 세웠던 2024년 작업(오른쪽)에 더해 이번 개인전에선 인화한 사진에서 나무 형체를 칼로 긁어낸 새로운 작업을 보탰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 갤러리현대 개인전 ‘(노)싱’ 전경. ‘헤리티지(유산) #7-2-2’(2026, 153.5×192㎝·왼쪽)와 ‘헤리티지(유산) #7-2-1’(2024, 130×160㎝)이 비스듬히 마주 보고 있다. 서울 정동 덕수궁 선원전 터를 홀로 지키던 회화나무 뒤에 하얀 캔버스를 세웠던 2024년 작업(오른쪽)에 더해 이번 개인전에선 인화한 사진에서 나무 형체를 칼로 긁어낸 새로운 작업을 보탰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굳이 나무가 중요했던 건 아니다. 어떤 소재라도 상관없었다. 다만 사진을 행위로 표현해야 하는 만큼 행위가 먼저 보이고 피사체는 뒤로 가는 게 맞았다. 그래서 흔하고 평범하며 무의미한 대상이 필요했고 이름 모를 나무, 동네의 나무가 적절했다.”

2004년 작가는 ‘사진-행위 프로젝트’를 한눈에 드러내는 ‘개념도’를 직접 그렸다. “기왕에 사진을 전공했으니 사진에 대한 정의가 아닌 정리를 하고 싶었다. 대학원(중앙대) 시절 그걸 뜯어말리던 지도교수에게 선전포고하듯 개념도를 내밀었더랬다.” 그러곤 22년째 그 ‘개념도’를 하나씩 실현하는 중이다. 그간 작가 혼자만 꺼내 보던 ‘개념도’를 제대로 펼쳐 공개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 이명호가 2004년부터 이어온 ‘사회-행위 프로젝트’의 근간이 된 ‘개념도’ 앞에서 그간의 작업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축적한 작가 작업의 내용·형식, 거기서 나온 연작 사이의 관계를 한눈에 드러낸 ‘개념도’는 이번에 처음 공개했다.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 전경(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이명호가 2004년부터 이어온 ‘사회-행위 프로젝트’의 근간이 된 ‘개념도’ 앞에서 그간의 작업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축적한 작가 작업의 내용·형식, 거기서 나온 연작 사이의 관계를 한눈에 드러낸 ‘개념도’는 이번에 처음 공개했다.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 전경(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캔버스란 장치 덕에 작가의 나무 작업에는 ‘연출한 사진’ ‘그리는 사진’에 이어 ‘아트액트’란 별칭이 따라다닌다. 물론 장면 그 자체로 완성체다. 하지만 때론 거기에 사회적 담론이 붙어 방대한 결과물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2024년 ‘헤리티지’ 연작이 그랬다.

일제강점기 훼철된 서울 정동 덕수궁 선원전(조선 임금들의 어진·신주를 봉안한 공간) 터를 홀로 지키던 회화나무(괴화목)를 담아낸 작업이다. 족히 200년은 넘긴 수령만큼 우리 역사의 한복판에서 찢어지도록 가슴 아픈 현장을 다 지켜봤을, 높이 십수 미터의 그 회화나무 뒤에 거대한 캔버스를 세웠다. 선원전 복원공사로 난장판인 그 한가운데 크레인까지 동원해 철골 구조물(24×34m)을 세우고 하얀 배경막을 설치한 뒤, 조용히 흘러가는 사계절을 다 지켜봤다. 이번 개인전에선 2024년 ‘헤리티지’ 연작에 더해, 인화한 사진에서 피사체인 회화나무를 칼로 긁어낸 작품들을 보태 나란히 걸었다. 작가가 “들어내니 드러났다”고 한, 부재로 선명해진 존재들이다.

이명호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 전경. 앞쪽으로 ‘작업 전경: 헤리티지(유산) #7-레이어’(2024, 145×256㎝)가 보인다. 복원작업으로 난장판인 덕수궁 선원전 터, 그 속에서 꿋꿋하게 홀로 선 회화나무 뒤로 하얀 캔버스를 세웠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 전경. 앞쪽으로 ‘작업 전경: 헤리티지(유산) #7-레이어’(2024, 145×256㎝)가 보인다. 복원작업으로 난장판인 덕수궁 선원전 터, 그 속에서 꿋꿋하게 홀로 선 회화나무 뒤로 하얀 캔버스를 세웠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의 ‘작업전경: 헤리티지(유산) #7-워커’(2024, 20×30㎝). 덕수궁 선원전 터에 홀로 선 회화나무 뒤로 거대한 캔버스가 드리워 있다. 예전에는 없던 작업도 보인다. 바닥에까지 캔버스를 내려 ‘특별무대’를 꾸민 건데. 선원전 복원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기꺼이 나서 ‘다신 없을’ 회화나무의 배경이 돼줬다. 사비나미술관·갤러리현대 두 개인전에서 볼 수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의 ‘작업전경: 헤리티지(유산) #7-워커’(2024, 20×30㎝). 덕수궁 선원전 터에 홀로 선 회화나무 뒤로 거대한 캔버스가 드리워 있다. 예전에는 없던 작업도 보인다. 바닥에까지 캔버스를 내려 ‘특별무대’를 꾸민 건데. 선원전 복원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기꺼이 나서 ‘다신 없을’ 회화나무의 배경이 돼줬다. 사비나미술관·갤러리현대 두 개인전에서 볼 수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새 연작 ‘키리바시’의 중심에 세운 맹그로브나무도 다르지 않다. 육지에서 저만치 떨어져 바다에 서 있는 그 나무에는 어쩔 수 없이 ‘지구온난화’라는 이슈가 따른다. 물론 그 곁에도 캔버스를 세웠다. 다만 이전과는 좀 다르다. 하얀 배경막 대신 야자섬유를 끈으로 만들어 그물막처럼 엮어낸 ‘성긴 캔버스’(5×5m)를 나무 ‘앞’에 세웠는데. 사라져 가는 키리바시를 암시했다고 할까. 여기에 애써 칼로 긁어내 그 실체를 감추고 본질을 선명히 한 작품들도 함께다.

이명호 갤러리현대 개인전 ‘(노)싱’ 전경. ‘작업전경: 키리바시 #1-1-2-1’(2026, 40×40㎝·왼쪽)과 ‘작업전경: 키리바시 #1-1-1-1’(2026, 40×40㎝). 키리바시 섬 맹그로브나무 뒤와 앞에 야자섬유 그물막을 설치하는 모습이 실루엣으로 잡혔다. 작가는 “주민들의 도움으로 그물막을 설치했다”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 갤러리현대 개인전 ‘(노)싱’ 전경. ‘작업전경: 키리바시 #1-1-2-1’(2026, 40×40㎝·왼쪽)과 ‘작업전경: 키리바시 #1-1-1-1’(2026, 40×40㎝). 키리바시 섬 맹그로브나무 뒤와 앞에 야자섬유 그물막을 설치하는 모습이 실루엣으로 잡혔다. 작가는 “주민들의 도움으로 그물막을 설치했다”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의 ‘키리바시 #1-2’(2026, 153.5×185.5㎝). 인화한 사진에서 맹그로브나무 형체를 칼로 긁어낸 작품이다. 수술용 메스와 건축용 나이프를 사용했다. 들어내서 드어내려 한 작업이다. 갤러리현대 개인전에 건 이 작품을 사비나미술관에서는 작은 버전(80×96㎝)으로 볼 수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의 ‘키리바시 #1-2’(2026, 153.5×185.5㎝). 인화한 사진에서 맹그로브나무 형체를 칼로 긁어낸 작품이다. 수술용 메스와 건축용 나이프를 사용했다. 들어내서 드어내려 한 작업이다. 갤러리현대 개인전에 건 이 작품을 사비나미술관에서는 작은 버전(80×96㎝)으로 볼 수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팔자주의자’ 작가 매번 끌어당긴 운명

“만약 그 뉴스를 놓쳤다면.” 키리바시 작업 앞뒤로 작가를 휘감은 키워드는 ‘운명’이었단다. 키리바시가, 맹그로브나무가 자신을 부른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좋게 말하면 ‘인연주의자’, 거칠게 말하면 ‘팔자주의자’라 할 정도로 작가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그 모든 배경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있다고 확신한다.

비단 키리바시뿐만 아니다. 처음 나무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그랬단다. “대학 건물 앞에 늘 서 있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어느 날 말을 걸었다”는 거다. ‘네가 찾던 게 나야’라면서. “친구들 도움으로 나무 뒤에 비계 4∼5단을 쌓고 광목천으로 캔버스를 만들어 촬영했다. 첫 나무 작업이었다.”

작가 이명호가 갤러리현대 개인전 ‘(노)싱’에 건 ‘헤리티지(유산)…#7-1’(2026, 420×420㎝) 앞에서 작품과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42m 높이 크레인에 올라 타고 덕수궁 선원전 터 회화나무 머리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촬영한 작품”이라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이명호가 갤러리현대 개인전 ‘(노)싱’에 건 ‘헤리티지(유산)…#7-1’(2026, 420×420㎝) 앞에서 작품과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42m 높이 크레인에 올라 타고 덕수궁 선원전 터 회화나무 머리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촬영한 작품”이라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 운명의 힘을 빌려서 말이다. 작가는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세우고 일에 신이 나 있다. “세상 누구나 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일”이라면서. “AI에 끌려다니는 인류, 그 원형의 삶을 가장 끝자리에서 되돌아본” 키리바시의 맹글로브나무가 그랬고, “보고도 못(안) 보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 역사고 예술”이란 걸 제대로 확인시킨 선원전 터의 회화나무가 그랬다.

과연 이후는 어떤 행위를 더 얹어 뭘 더 ‘들어내고’ 뭘 더 ‘드러낼’ 건가. 작가의 그 운명이란 게 이젠 슬슬 궁금해진다. 사비나미술관 전시는 12월 13일까지, 갤러리현대 전시는 12월 20일까지다.

이명호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 전경. ‘키리바시 #1-1-1’(2026, 360×360㎝)과 ‘키리바시 #1-1-2’(2026, 360×360㎝), 그 왼쪽으로 ‘키리바시 #3-3’(2026, 153.6×153.6)이 걸렸다. 키리바시 섬에서 바라본 수평선을 칼로 긁어낸 작품이다. 한 관람객이 작품 사이를 천천히 이동하며 전시장에 오래 머물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 전경. ‘키리바시 #1-1-1’(2026, 360×360㎝)과 ‘키리바시 #1-1-2’(2026, 360×360㎝), 그 왼쪽으로 ‘키리바시 #3-3’(2026, 153.6×153.6)이 걸렸다. 키리바시 섬에서 바라본 수평선을 칼로 긁어낸 작품이다. 한 관람객이 작품 사이를 천천히 이동하며 전시장에 오래 머물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 갤러리현대 개인전 ‘(노)싱’ 전경. 회화나무 머리 위에서 촬영한 작품 ‘헤리티지(유산)…#7-1’(2026, 420×420㎝·왼쪽)이 그 회화나무를 칼로 긁어낸 작품 ‘헤리티지(유산)… #7-2’(2026, 153.5×153.5㎝)를 내려다보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명호 갤러리현대 개인전 ‘(노)싱’ 전경. 회화나무 머리 위에서 촬영한 작품 ‘헤리티지(유산)…#7-1’(2026, 420×420㎝·왼쪽)이 그 회화나무를 칼로 긁어낸 작품 ‘헤리티지(유산)… #7-2’(2026, 153.5×153.5㎝)를 내려다보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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