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21일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을 국보 제333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은 신라 말~고려 초 활동한 승려인 희랑대사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조각으로 고려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사한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승의 모습을 조각한 조사상을 많이 제작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유례가 거의 전하지 않고 있다. ‘희랑대사좌상’이 실제 생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으로 전래되고 있다.
희랑대사의 구체적 생존시기는 미상이다. 조선 후기 학자 유척기(1691~1767)에 따르면 고려 초 기유년(949년 추정) 5월에 나라에서 시호를 내린 교지가 해인사에 남아 있었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으로 해인사의 희랑대에 머물며 수도에 정진했다고 전해진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희랑대사좌상’은 조선시대 문헌기록을 통해 해인사의 해행당, 진상전, 조사전, 보장전을 거치며 수백 년 동안 해인사에 봉안됐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덕무(1741~1793)의 ‘가야산기’등 조선 후기 학자들의 방문기록이 남아 있어 전래경위에 대해 신빙성을 더해준다.
문화재 지정조사 과정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 작품이 얼굴과 가슴, 손, 무릎 등 앞면은 건칠(삼베 등에 옻칠해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듬)로,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된 유물로는 신라~고려 초에 제작된 보물 1919호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 여래좌상’이 있다.
‘희랑대사 좌상’은 다른 조각상들과 달리 관념적이지 않은 사실적 표현에서도 높이 평가받았다. ‘희랑대사 좌상’은 마르고 아담한 등시대 체구에 인자한 눈빛과 미소가 엷게 펴진 입술, 노쇠한 살갗 위로 드러난 골격 등이 드러나 있어 생전 희랑대사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국에 문헌기록과 현존작이 모두 남아 있는 조사상은 ‘희랑대사좌상’이 유일하다”며 “제작 당시의 현상이 잘 남아 있고 실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한 점에서 예술 가치도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같은날 15세기 한의학 서적 ‘간이벽온방(언해)’와 17세기 공신들의 모임 상회연(相會宴)을 그린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 그리고 가야문화권 출토 목걸이 3건을 포함해 총 5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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