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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과 미 연준의 정책 방향성이 뚜렷해지면서 엔화가치가 빠르게 오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행은 전날 단기 정책금리를 기존 0∼0.1%에서 0.25%로 인상했다. 또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액을 현재 월 6조엔에서 2026년 1~3월 3조엔까지 줄인다는 양적 긴축 방침도 제시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엔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같은 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기자 간담회에서 “이르면 9월 회의에서 금리 인하를 논의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미일간 금리 격차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견해가 확산했다. 이에 엔화를 사고, 달러를 팔려는 움직임이 강해지며 엔화 강세를 떠받쳤다.
시장은 통화긴축을 추진한 연준과 통화완화 기조를 이어온 일본은행이 각각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크게 벌어졌던 양국간 금리 차이가 축소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미·일 국채 금리 차이는 7월 말 기준 3.8%로 전달보다 0.6%포인트(p) 축소됐다. 월 말 기준으로는 2022년 8월 이후 차이가 가장 작아졌다.
외환시장에서는 2022년 3월 이후 미 연준의 금리인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양국간 금리차이에 주목한 엔화 매도, 달러 매수가 확대됐다. 이에 달러·엔화 환율은 연준의 금리인상 시작 전 달러당 115엔에서 올해 7월 초 162엔으로 오르며 37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후 미일 금리차 축소 전망에 148엔대 중반까지 떨어지는 등 엔화는 한달새 널뛰기를 했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최근 2년 정도 엔화 약세 국면에서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엔화 매수 개입을 통해 급격한 엔화 약세 진행을 막으려 했다”며 “근본적인 금리차 축소로 엔화 환율은 지금까지의 흐름이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과거 연준의 금리인하 시점과 맞물려 엔화 강세로 진입한 시기가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했던 2007년 9월 연준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 금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총 3% 이상 금리를 인하했다. 금리 인하가 시작된 뒤 6개월 동안 달러·엔화 환율은 약 12엔 하락했다. 다만 금리인하 속도와 배경이 되는 경제 상황에 따라 환율 반응도 달라질 수 있다. 미 연준은 지난 1995년 7월 기준금리를 내렸으나 총 인하폭이 0.75%에 그쳤고, 달러·엔화 환율은 금리인하 후 반년간 약 19엔 상승했다.(엔화가치 하락).
엔화가치가 더 오를지 여부는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인상 여부에 달려있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일본은행은 엔화 매도세를 견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예고했지만, 일본 경제가 지금보다 더 높은 금리상승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미지라는 판단에서다.
미국 운용사 PGIM 픽스드 인컴의 로버트 팁은 “미국과 일본의 정책금리 차이가 여전히 5%에 달한다”며 “최소 1% 이상 더 좁혀지지 않으면 엔화 시세가 안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행이 국채매입 계획을 축소하는 양적긴축과 금리인상으로 향하면서 일본 경제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엔화 강세로 수출 업체들의 실적과 임금 인상 의지를 꺾어 물가 인상 흐름을 이전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미국 채권 등 투자 포트폴리오 중 일부를 일본으로 돌려 해외 시장을 뒤흔드는 동시에 일본의 막대한 부채 상환액을 부풀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메다 세이사쿠 솜포 인스티튜트 플러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전반적으로 일본은행이 당장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일본경제는 1% 정도까지 한두 번의 금리 인상을 더 견딜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그때부터 금리 결정이 어려워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