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 초청 토론에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 “몇 년 전만 해도 그녀가 흑인이라는 걸 몰랐는데, 갑자기 흑인이 됐고 지금은 흑인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며 “그녀는 인도계인지 흑인인지 난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항상 인도계였고, 갑자기 흑인으로 돌아섰다”며 “누군가 이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아시아계 부통령인 해리스 부통령은 아프리카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 아버지와 인도 이민자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해리스 부통령은 흑인에게 고등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하워드대학에 입학해 공부하며, 흑인 여학생 단체인 ‘알파 카파 알파’에 가입하는 등 젊을 때부터 흑인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해왔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해리스 부통령의 인종에 대한 차별적 발언으로 여겨지며, 거센 비판이 잇따랐다.
해리스 부통령은 자신의 인도계 흑인 혈통에 근거 없는 의구심을 제기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분열과 무례함”이라는 “낡은 쇼”를 되풀이했다고 비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흑인 여대생 클럽인 ‘시그마 감마 로’가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개최한 행사에서 “미국 국민은 진실을 말하는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다”며 “우리의 다름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힘의 필수적인 원천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
인종을 이용해 분열을 증폭시키는 발언에 민주당도 즉각 공세에 나섰다. 흑인 여성인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혐오스럽고 모욕적”이라며 “누구도 타인의 정체성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다”고 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인 더그 엠호프도 선거자금 모금행사에서 “트럼프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도 훨씬 더 끔찍한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줬다”며 “다시는 백악관 근처에도 얼씬거리면 안된다”고 말했다.
해리스 캠프의 마이클 타일러 대변인은 성명에서 “오늘의 소동은 이번 선거 기간 내내 트럼프의 MAGA(마가·미국을 다시 더 위대하게) 집회의 특징이었던 혼돈과 분열을 맛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내 반(反) 트럼프 세력도 공세에 참여했다. 래리 호건 전 메릴랜드 주지사는 성명을 통해 “해리스 부통령의 인종적 정체성에 대한 공격은 용납할 수 없고 끔찍하다”며 “미국은 더 나은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해리스 부통령을 겨냥한 미국 극우 세력의 성·인종차별적 공격과 궤를 같이하며, 이를 수면위로 끌어 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NYT는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가장 노골적인 공격 중 하나였다”며 “그 발언은 주로 극단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생각을 주류 정치 대화에 끌어들이려는 시도로 보였다”고 분석했다.
이날 각각 흑인 유권자들 앞에서 유세를 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차이가 더욱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해리스는 흑인과 남아시아계 유산을 가진 여성이고, 트럼프는 여성과 유색인종, 언론인을 공격한 적이 있는 백인 남성이라는 점에서 두 후보 간 뚜렷한 차이점을 보여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