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자컴퓨터 기술이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인 반면, 양자암호 분야는 우리나라 기업이 일찌감치 뛰어들어 상용화 노력을 기울여왔다. 국가정보원이 세계 최초로 양자암호 제품에 대한 인증기준을 마련한 것 역시 기술이 어느 정도 무르익은 만큼 공공시장에 대한 진입로를 열어달라는 국내기업들의 꾸준한 요구 때문이다.
실제 ‘상품’ 라인업들은 이미 어느 정도 준비가 된 상황이다.
SK텔레콤은 2011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양자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2018년 스위스 양자암호통신기업인 IDQ를 인수해 양자난수생성기(QRNG)를 개발했다. 이후 QRNG를 반도체 형태로 구현한 QRNG칩을 만들어 양자보안폰 ‘갤럭시 퀀텀 시리즈’에 적용했다. 최근에는 QRNG칩과 양호통신반도체를 하나로 만든 ‘양자암호원칩’을 출시했다.
SKT와 KT는 양자키 분배(QKD) 방식을 활용한 전용회선 서비스를, LG유플러스는 양자내성암호(PQC) 기술을 활용한 전용회선 서비스를 내놓았다. QKD는 양자의 특성을 활용한 물리적 보안장치이고 PQC는 양자컴퓨터로도 수십억 년이 걸리는 복잡한 수학문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암호체계다.
이동통신 3사는 2020년 디지털뉴딜 계획에 따라 ‘양자암호통신 시범인프라’를 구축한 경험이 있다. 이를 통해 SKT와 KT는 QKD의 약점으로 꼽히는 높은 구축 비용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개발했고, LG유플러스 역시 2020년 6월 세계 최초로 PQC 기술을 탑재한 광전송장비(ROADM) 개발에 성공했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우리넷(115440), 바이오로그디바이스(208710), 옥타코, 코위버(056360), 케이씨에스(115500), 비트리 등 국내 양자암호 분야 중소기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SDT 같은 스타트업이 태동하고 있는 것 역시 좋은 시그널로 보인다. SDT는 한국과학기술원(KIST)에서 기술을 이전받아 QKD 장비를 소형화하고 국내 처음으로 하나의 수신부 서버에 다수 송신부 시스템을 연결한 ‘일대다 통신’을 통해 구축비용을 낮추는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국정원의 보안적합성 검증이 완료되면 이들 상품군을 중심으로 정부, 공공기관에 양자암호 장비·서비스를 보급하기 위한 경쟁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전망이다. 양자암호 업계 관계자는 “양자암호에 대한 수요가 가장 큰 국방 등을 비롯해 공공시장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으나 성사가 쉽지 않았다”며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인증이 해결된 만큼 좋은 성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공공기관에 양자암호 통신망을 구축, 레퍼런스가 확보되면 민간시장에 대한 진입 역시 훨씬 수월해질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해외시장 진출 역시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다. 유럽에서 진행 중인 양자암호 상용망 구축사업인 유로 양자통신인프라(EU QCI) 프로젝트에선 이미 국내와 유사한 망 구성이 논의됐으며,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한국의 국가 융합망 사업을 모델로 국가망에 양자암호기술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레고리 리보디 IDQ 최고경영자(CEO)는 “국가 인증은 양자 기술 시장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며 “한국이 선도하면서 유럽과 아시아 등 다른 국가·지역에서도 이와 같은 인증제도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