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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지체장애 2급 장애인으로, 2019년 12월 마포구의 한 건물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다. 이 건물의 지하 1층에는 주차장과 인쇄소가 있었으며 지상 1층에는 작업장과 창고, 2층에는 사무실, 3~5층은 다가구 주택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A씨는 인쇄소 1층 작업장에서 전기난로에 종이 봉투를 넣었고, 불이 붙은 종이 봉투를 쓰레받기로 옮긴 후 작업장의 종이들에 옮겼다. 이 불은 냉난방기와 복사용지, 건물 일부를 태워 1억40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냈다.
재판에 넘겨진 A씨 측 변호인은 A씨의 정신감정서를 근거로 방화의 고의성이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A씨 측은 “만성적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인해 사물변별능력, 의사결정능력이 온전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불을 지르는 행위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거나 판단할 수 없어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의성이 없었다’는 A씨의 주장을 살펴보기 위해 재판부는 당시 CCTV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에는 A씨가 종이 봉투를 이용해 불을 붙이는 부분이 담겨있었지만, 다른 직원들이 출근하자 난로를 끄고 화재 진압을 시도하는 모습이 나왔다. A씨는 연기를 보자 바가지를 이용해 정수기 물을 퍼담아 창고를 오가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동은 건물에 불을 붙여 이를 소훼하고자 하는 사람의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단순한 불장난을 넘어서는 동기를 찾기도 어렵고, ‘실화죄’가 아닌 ‘현주건조물방화죄’의 요건인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실화죄로 공소장 역시 변경되지 않아 실화죄로도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