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종호 기자]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제재가 장기화할 조짐인 가운데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통해 삼성전자(005930)가 미국 현지 생산라인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현지 공장 규모를 늘릴 경우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를 피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미국 정부의 투자 확대 요구에도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 세계 반도체 업황이 꺾인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가 부담인 데다 이번 사태에 대한 단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22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 현지 생산라인 확대를 중장기 대응 방안의 하나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4일부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관련 핵심소재 3개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여기에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등 다른 분야에서도 추가적으로 규제를 확대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7일 일본으로 긴급 출장을 떠나는 등 발 빠른 대응으로 핵심 소재 재고 등을 확보해 급한 불은 끈 상황이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가 추가적으로 확대되고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소재와 부품 등 수급 차질로 인한 피해가 예상된다. 당초 삼성전자는 소재와 부품 등의 조달처 다변화를 위해 중국 등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입을 검토했지만 일본 정부가 우회 수입조차 규제하면서 결국 무산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번 사태의 중장기 대응 방안 가운데 하나로 미국 텍사스 반도체 공장과 사우스캐롤라이나 세탁기 공장 등의 생산라인 확대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겨냥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이어 스마트폰과 가전, TV 등 다른 분야로 수출 규제를 이어가더라도 미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만큼 미국 현지 소재 공장에서는 우회 수입을 통한 소재와 부품 등 수급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또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삼성전자의 미국 현지 투자 확대를 부추기고 있는 상황에서 시기적으로도 적절한 투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미국 현지에 위치한 공장까지 손을 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앞서 지난달 방한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부회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도 투자를 강조한 만큼 전략적으로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등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하락세인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선뜻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부담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투자를 결정하더라도 공장 가동까지는 자금 조달부터 부지 확보, 건설 기간 등 장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당장 눈 앞에 다가온 위기 극복을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