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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직후 패전국인 오스트리아에는 굶주린 아이가 넘쳐났다. 고아가 속출하고 산업시설과 농토가 초토화한 탓도 있지만 승전국들이 패전국들에 봉쇄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적국의 아이들을 도우려는 젭은 여론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으나 이적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의 호소에 감복한 재판부는 5파운드의 상징적 벌금만 부과했고 이 돈마저도 기소 검사가 기부했다.
그해 5월 19일 런던에서는 최초의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펀드 창립 모임이 열렸다. 젭은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에게는 단 한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한 명의 아이라도 더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단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어느 나라 아이건 어떤 종교를 가졌건 구해야 합니다.”
젭은 1923년 △굶주린 아동은 먹여야 하고 병든 아동은 치료해야 한다 △재난이 닥치면 아동을 가장 먼저 구해야 한다 등 5개항으로 이뤄진 아동권리선언을 발표했다. 이는 이듬해 국제연맹 총회에서 ‘아동 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이란 이름으로 공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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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엔아동권리협약 34주년 기념일이다. 올해는 그 모태인 아동권리선언 100주년이기도 하다. 아동권리협약은 가장 많은 나라(196개국)가 비준한 국제조약이다. 모든 국제사회가 협약 취지에 공감해 실천을 다짐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중동에서는 그 약속이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과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어린이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지난 13일 “사망자 1만1240명 가운데 4630명이 아이”라면서 “이스라엘군이 병원 등을 포격해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병원을 은신처로 삼아 아이들을 인간 방패로 내세우고 있다”고 비난했다.
젭은 “모든 전쟁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치러진다”고 역설했다. 어린이는 직접 공격받지 않더라도 자기 몸을 지킬 수 없고, 혼자 먹을 것을 구하거나 피난하지 못해 심각한 생존 위기에 놓인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궤멸이라는 목표 아래 민간인 거주지를 공격하고 있어 어린이 희생이 커지고 있다. 숱한 전쟁에서 양민 학살이 저질러졌지만 이 같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두고두고 인류의 오점과 수치로 남을 것이다.
젭은 “유일한 세계공용어는 어린이의 울음소리”라고 말했다. 그 소리는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알아들을 수 있기에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지구촌 전쟁의 포화는 여전하다. 병원이 공격 당하고, 신생아가 위협 받고 있다. 당장 어린이에 대한 공격은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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