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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미국의 적성국으로 외교 단절 기한이 가장 길게 이어지고 있다. 북한과 함께 한국전쟁에서 미국에 대항했던 중국은 1979년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이뤘다. 중국 역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후부터 대미 수교를 추진했지만 실제 수교는 미국을 둘러싼 정세가 변하면서 중국과의 ‘전략적 이익’이 맞아떨어질 때에야 비로소 이뤄졌다. 미국은 베트남전으로 국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소련의 군사력 증강에 대처하는 전략적 카드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선택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외교 관계의 수립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1979년 1월 1일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이뤘다.
미국이 베트남과 관계 정상화를 이룬 것은 1995년이다. 종전 20년만에 관계 정상화를 이룬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선 것도 역시 전략적 고려에 따라 이뤄졌다. 미국은 당시 소련의 붕괴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세력 불균형을 해소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고리로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을 선택했다. 1991년 초 미군유해 송환을 위한 임시사무소가 하노이에 설치됐고 1992년에는 양국 고위당국자가 관계정상화를 비공식 회담을 가졌다. 이어 1993년 클린턴 행정부가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로드맵에 지지를 표했고, 1995년 초 양국 간 연락사무소가 개설된 데 이어 같은 해 7월 관계 정상화를 이뤘다.
리비아와의 관계 정상화는 카다피 원수가 전격적으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함에 따라 이뤄졌다. 1969년 리비아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대통령이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미국은 1980년 리비아와 국교를 단절하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주도하며 리비아에 대해 무기금수, 자산동결 등의 조치를 이어갔다. 카다피 원수는 2003년 사담 후세인이 체포된 지 6일 만에 대량살상무기 개발 계획 포기를 전격적으로 밝혔고 이후 2006년 미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미국은 리비아가 공개적으로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공표한 이후에도 관계 정상화까지 2년 반 동안 이행상황을 지켜봤다.
미국이 적성국과 관계 회복에 나선 가장 최근 사례는 쿠바다. 지난 2015년 오바마 행정부는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공식 선언했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공산 혁명을 이유로 국교를 단절한 지 54년 만이다. 미국은 중남미에서 쿠바를 비롯해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 반미 정권 국가들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그러나 이들의 공산체제가 흔들리기보다 오히려 미국이 중남미에서 고립되는 결과가 나타나자 봉쇄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관계 정상화에 나선 것이다. 2015년 4월 59년만에 열린 정상회담 이후로 양국 관계 정상화 논의는 급물살을 타 그해 7월 수교 관계를 복원했다.
북미 수교 역시 결국 북한이 미국의 전략적 동기를 얼만나 만족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앞서 북미수교에 대해 “특별한 것이라기보다 예정된 수순”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미국이 일관되게 요구해온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에 상응하는 ‘비핵화’ 조치를 내놓는지가 북미 수교 성사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