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에 태어난 고인은 14세부터 같은 마을에 사는 문백윤의 휘하 삼천포송포농악대에서 수벅구 김봉구로부터 벅구(농악에 쓰는 작은 북, 주로 소고)를 배우기 시작했고, 2년 후에는 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1981년 문백윤이 사망한 이후에는 뿔뿔이 흩어진 쇠꾼들을 규합해 삼천포농악단을 다시 결성하고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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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을 배우고자 하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모여들면서 고인은 농악으로 삼천포 지역의 문화를 알리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에 제1회 삼천포시민문화상을 수상했다. 특히 판굿의 개인놀이에서 꽹과리를 치는 상쇠와 어우러지며 장구를 치고 상모를 돌리는 고인의 예능은 다른 지역의 농악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진주삼천포농악의 특징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단이었다. 이 같은 농악에 대한 열정과 전승활동을 인정받아 1991년 국가무형문화재 진주삼천포농악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고인은 한평생 진주와 삼천포 지역의 농악 전승과 발전에 헌신했다.
유족으로 자녀 박영출·성출·미자 씨가 있다. 빈소는 사천 공설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9시. 장지는 경남 사천 가족묘원이다.